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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3. 2023

[직관과 단상] 9. 단련 그리고 수양

- 나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

출산 후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갓난아기가 숨을 제대로 쉬는지 손가락을 아기 코끝에 갖다대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던 어느날, 전화가 왔다. 이제 푹 쉬었으니, 그만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들을 좀 도와달라고.


직접적으로 몸담고 일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명확히 그럴 수 없노라고 말하지 못했던 건 과거에 일했던 곳인지라 일종의 의리 같은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닥이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풍토가 있는지라, 당시 몸 담고 일하는 곳에서도 품앗이 차원에서 그러마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의 의지나 결정에 달려있다 여겼는지 수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나의 결론은 도저히 안되겠다였다. 


#

사랑하는 아기를 두고, 출산휴가를 완벽히 채우지 못하고 복귀를 했다. 출산 두어달 지나 석달이 채 안되서였던 것 같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첫 출근하던 날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땅이 내게 달려오는 것 같았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마치 아무도 내편이 아닌 원정경기에 응원단도 없이 홀로 나간 선수가 된 기분으로, 그렇게 나는 복귀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의리가 없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달 전 s.o.s를 거절했기 때문이었는데 아기는 핑계였고 결국 내가 그들을 배신하고 다른 줄에 선 사람처럼 여겼다. 그런 평판은 당시 몸담고 있던 조직으로까지 영향을 끼쳤다. 


#

그들인지, 그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나에 대해 누군가가  평한 걸 상사는 어느날 단 둘이 앉은 자리에서 작심이라도 한 듯 전했다. 머리가 띵해졌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십년이었다. 십년간 모든 에너지를 끄집어 내어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매번 홈런을 치진 못했어도 꽤 실력좋은 선수였다고 다들 평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당시 나는 사가 전하는 말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상사를 신뢰했으므로 그냥 사실이라고 여겼다. 충격은 강했다. 세월이 좀 흐른 뒤 100% 팩트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마음에 안드는 후배에게 직접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사장이 너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잘 하라는 말을 곁들여 길들이기를 하듯, 일부 사실을 증폭해 나를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 지난일이지만 나는 그때 그렇게 순진했다.


내게 전해온 나에 대한 평가는 '자신이 무슨 보스라도 되는 듯 착각하고 있고 다소 안이하게 일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 - 자신의 판단을 너무 확고하게 믿고 신뢰해서 생기는 일종의 병과 같은 증상처럼 여기는 듯 했다 - 조심해야 한다'고 였다.  


#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을 대할 때도 나무를 대하듯이 하면 돼요. 

무화과 나무한테 버찌가 안 열린다고 화내는 건 어리석다는 거죠. 

사람은 다 다르고, 각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의 욕망으로 채워넣고, 제멋대로 실망하고 다툴 필요가 없어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철저히 저런 삶을 표방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애써 설명하지 않고 항변하지 않으며 니들 좋은대로 생각해, 어차피 진실을 밝혀지기 마련이고, 

그건 니들 그릇이 그것 밖에 안되니깐 그렇게 밖에 생각못하는 거라고.  

자존심인지, 천성인지 모르겠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거나 나를 알아주길 강요하거나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참 많이 화가 났고 섭섭했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려 10년간 모든 나의 개인적인 욕망을 뒤로한채 밤낮으로 주말에도, 휴일에도 일을 했던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매몰차게 대하면서까지 성과를 내려 애썼던 말인가.


아기를 낳은 뒤 한 달도 채 안된 이에게 '푹 쉬었으니 나와 일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라고 다그쳤으면서 그걸로 인해 평판이 이상해질까 결국 나 한명을 희생양을 삼는,  

폭력적이거나 무지막지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들과 서서히 연을 끊으면서 최근 나는 

다시금 평온을 되찾았다.  


무화과 나무에게 버찌가 열리지 않는다고 화내는 건 어리석은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데 인연이란 것이 어쩜 이렇게도  끈질긴 것인지, 그들과 나를 여전히 연결시키는 사람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하고 답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곤 하는데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야 말하는데, 정말 불행했어요. 결혼도 하지 마라. 빨리 빨리 해라. 말 안들으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라. 결국 말 안듣는건 네가 무능해서다. 이런 말만 듣고 살았는데 어찌 행복했겠어요. 그런 말하지 않고 좀 늦어도 좋아. 정말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한지. 다시는 그곳을 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나는 그렇게 단련과정을 거쳐 마음의 수양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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