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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Aug 05. 2022

영화가, 혹은 현실이 보내온 연극 초대장 (3)

<사랑을 카피하다>.2010 (3)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5. 우리는 배우였다가 말았다가


  제임스와 엘르는 그렇게 묘한 기분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둘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카메라는 카페 시퀀스와 같은 쇼트로 두 인물을 찍는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면 두 인물의 상태다. 그들은 이제 서로가 배우임을 의식하고 행동한다. 메뉴판을 받은 둘은 와인과 음식을 고르고, 오래 부부 관계로 지낸 사이인 듯 대화를 나눈다. 엘르는 아까보다도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이 상황을 줄곧 어색해하던 제임스도 그녀와 한데 호흡하며 물 흐르듯 연기를 이어나간다.

창문을 보는 엘르. 사진8


  이 씬에서 우리는 초반 시퀀스의 데자뷰를 볼 수 있다. 창문을 바라보는 엘르. 아들과 음식을 기다리던 엘르는 창문을 흘깃보더니 밖으로 나간다. 그녀는 창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주문한 음식을 받지 못한다. 사진8의 레스토랑 씬을 보자. 그녀는 제임스와의 성격 차이로 부부싸움을 (가장한 연기를) 하는데, 이때 그녀는 창밖에서 아까 만난 신혼부부를 발견한다. 싸움을 멈추고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신혼부부의 싱그러움을 보며 감탄한다. 그녀는 연기를 중단하고 창밖으로 나갈 것인가. 다행히(?) 이번엔 창문 안에 갇히지 않는다. 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듯, 배우는 무대를 함부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부부싸움을 연기한다. 아까보다 연기는 자연스러워졌고, 둘은 이전에 없던 서사까지 만들어낸다(ex. 처음으로 엘르와 함께한 기념일에 쿨쿨 자고 있던 제임스).

  이때 레스토랑 씬과 카페 씬의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관객의 유무다. 그들의 연기를 본 제삼자가 레스토랑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카페 여주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엘르에게 말을 건다. 두 부부(로 가장된 남녀)의 대화를 인상깊게 본 (여주인이라는) 관객. 제임스가 전화받으러 나가면 그녀는 엘르에게 말을 건다. 레스토랑에선 (가장된) 부부싸움에 누구도 끼어들지 않는다. 메소드 연기를 펼치느라 두 주인공이 고함을 쳐대도, 그곳은 이미 둘만을 위한 무대다. 제임스는 레스토랑에서도 먼저 자리를 뜨는데, 이때 혼자 남은 엘르에게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엘르를 봐주는 사람은 영화 밖의 관객인 '나'뿐이다. 이때 '나'는 영화 속 엘르와의 접촉이 불가능하다. '나'는 관객으로서 엘르의 선택과 행동을 지켜봐야 할 뿐이다. 엘르 앞에는 창밖에서 식을 즐기는 신혼부부만 보인다.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와 창밖의 그들과 같이 춤을 출 것인가. 그녀는 홧김에 뺀 귀걸이를 다시 차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한다. 동시에 제임스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나'라는 관객을 앞에 두고 제임스와 엘르는 다시 연기를 시작한다. 또 시작된 부부싸움은 제대로 불이 붙어 쉬이 꺼지지 않고, 그렇게 둘은 제대로 식사도 못한 채 레스토랑을 나간다.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엘르

  

  밖으로 나온 둘은 각자가 맡았던 역할에서 빠져나왔을까. 약국에서 목을 축이고 나온 엘르와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제임스. 엘르는 갑자기 성당 안으로 들어가 잠시 앉아있고 제임스는 그녀를 밖에서 기다린다. 성당에서 엘르가 나오고 둘은 어느 노부부의 뒤를 따라간다(그때 들리는 종소리는 나중에 후술할 것이다). 그들은 계단에 앉아서 잠깐 쉰다. 이전에 야외를 돌아다니는 씬을 영화는 롱테이크로 보여줬다. 그러나 마지막 야외 씬에선 여느 극영화들처럼 빈번히 쇼트를 나눈다. 이전 야외 씬들에선 두 인물이 정말 많은 말을 했음에도 어느 지점에서는 결국 교감의 한계에 봉착했다면, 지금의 그들은 누구도 입을 안 열지만 어떤 때보다 가장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 마침내, 카페와 레스토랑에서의 정면 미디엄 쇼트를 우리는 야외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사진9). 관광객 혹은 관객이었던 두 인물의 배우화(化). 계단에 앉은 제임스와 그의 어깨에 기대는 엘르는, 광장에서 '나'가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동상의 형태를 어렴풋이 떠올리게 한다. 동상 앞에서 거의 갈라질 뻔했던 둘은 스스로 동상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평가의 주체가 아닌 그 작품 자체가 된다.

  

정면 미디엄 쇼트로 찍히는 야외에서의 제임스. 사진9


  영화가 막바지로 치닫으면 슬슬 궁금해진다. 둘 중에 누가 먼저 이 연극을 끝낼 건가. 관객(여주인)의 오해가 낳은 배우(엘르)일까, 혹은 스스로 프레임 안에 들어간 배우(제임스)일까. 마지막 씬을 보자. 그들은 신혼을 함께 보냈다는 숙소에 들어간다. 엘르는 침대에 누워 제임스에게 떠나지 말라고 한다. 이때 떠난다는 말은 실제로 제임스가 아홉 시까지 가야 될 기차역이다. 그리고 제임스는 아홉 시까지 가야한다는 말을, 그들이 연기에 몰입하기 한참 전에 했다(자동차 안에서). 엘르는 둘만의 연극에 현실의 일을 끌고 온다. "가지 마요" 아련한 말투로 그녀는 제임스에게 말한다. 이는 제임스에게 필사적으로 보내는 신호다. 연극으로 끝내지 말자. 이 꾸며낸 사랑을 현실로 끌고 오자.  

  제임스는 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레스토랑 씬으로 잠깐 돌아가면 엘르는 화장실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치장해 마치 스스로를 여행을 온 부부처럼 꾸며냈다. 제임스는 어떤가. 그도 어쩌면 이 연극이 계속 되기를 바랄 것이다. 레스토랑 안 화장실의 엘르처럼 밤 아홉 시까지 꾸며낸 부부처럼 그녀와 있고 싶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엘르의 신호를 무시하고 싶다. 그때 창밖에서 울리는 성당 종소리는 그를 고민하게 만든다. 가장 깊은 연기를 통해 엘르와 교감하는 도중 들렸던 종소리. 이 교감은 단순히 연기로 발산해낸 사랑의 인위적인 모양새일까. 혹은 진작에 심어진 사랑이란 감정이 발산하게끔 만든 혼신의 연기였을까. 그는 헷갈린다. 이 연극의 막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화장실에서 나오지만 종은 계속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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