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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Jun 03. 2016

언제부터 였을까 '의자' 마지막 이야기

우리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해주는, 내게는 유일한 대상




끈을 놓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른 대상을 가릴까 걱정되는




일주일이었다. '언제부터 였을까'라는 첫 번째 매거진을 만들고 스스로가 정한 글의 발행 주기. 지금도 벅찬 일주일이지만 다음 글의 주제가 '골목길'이라면 한 번이라도 더 걷기 위해 노력했고 '열차'라면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플랫폼과 열차 속에서 보내기도 했었다.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었기에 한 번이라도 더 부딪히고 마주하려 애썼다. 그래야,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의자'는 달랐다. 열차를 기다리다, 빛을 바라보며, 카페에 들어가면서도 내게 가장 먼저 밟히는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가장 처음 발행했던 글도 '의자'였고 두 번째 이야기로 먼저 닿은 것도 '의자'였다. 그만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대상을 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을 마지막으로 '의자'에 담긴 이야기는 작은 조각들로만 남겨두려고 한다. 메모든, 인스타그램이든, 머릿속이든 말이다.





2016년 봄, 남해 다랭이 마을의 어느 카페 옥상





지난 5월, 오랜만에 2박 3일 일정으로 남해 여행을 다녀왔다. 첫날, 늦은 오후까지 머무른 곳은 다랭이 마을이었고, 떠나기 전의 아쉬움에 잠시 카페에 들렀다. 테라스에 앉아 있는데 옥상에서는 마을을 안고 더 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해 질 무렵의 바다를 떠올리며 계단을 올랐는데,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다 대신 하늘을 보려 누워있는 노란색 의자였다. 내 무게를 지탱해줄 받침대가 없으니 제대로 놓여 있더라도 앉을 수 없었겠지만, 누워있다 하더라도 딱히 혼자 앉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바다는 잊은 채 의자 곁을 서성이며 쓰러진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의자가 하나밖에 없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말없이 의자를 발로 툭 치더니
눕혀진 의자 한쪽에 슬쩍 앉았다
그리고 혼자 앉으면 균형이 맞지 않으니 어서 앉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지탱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고
한 사람을 위한 의자는 어느새 두 사람을 위한 의자가 되었다






혼자였기에, 혼자가 아닌 상황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고

좋아하는 시간이었기에, 혼자가 아닌 둘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옥상에 올랐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에

받침대가 없었음에도 둘이었다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더해졌다.






2016년 봄, 남해 다랭이 마을의 어느 카페 옥상






잠들기 전, 보고 싶어 떠오르는
이름 하나 정도는 있어야 인생입니다

오늘처럼 비가 올 때,
보고 싶어 떠오르는 이름 하나 정도는 있어야
그것이 인생입니다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보고 싶어 떠오르는 이름을 생각한 용혜원 시인. 누군가 누구를 그리워하는 상황이나 시간이 하나씩 있는 것처럼, 내게는 의자가 그렇다. 함께 마주 보거나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에 계속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옥상에는 또 다른 의자가 있었다. 튼튼한 받침을 갖고 있었고, 누워 있지도 않았으며 둘이 앉아도 충분할 의자. 한쪽에 살며시 앉아, 이번만큼은 종일 그리워하게 될 한 사람이 아닌,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옆에 앉혀본다.






칠이 벗겨진 의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과는 이렇게, 그 사람과는 또 이렇게
서로 다른 취향을 하나씩 채워 넣을 수 있으니
칠이 벗겨진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씩은 그래도 좋겠다 싶었다






2016년 봄, 남해 다랭이 마을의 어느 카페 옥상






그래서, 내 곁은 어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잔을 보며
한 개의 잔이 놓여있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야 라고 말했다
더없이 잔잔한 시간이었다






그날, 옥상을 내려가기 전에야 팔짱을 낀 두 개의 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얼마나 떨어지기 싫었으면 어느새 나란히 자리를 잡고 바다를 향해 있었을까. 한쪽에 앉아선 칠이 벗겨진 의자와 다른 점을 금방 깨닫고, 이번에는 쉽게 떠나지 않을 사람을 그려본다. 곁이 주는 위로가 필요하다며 나를 찾아왔던, 우리의 시간을 잔잔하다고 말했던 그 사람을. 팔짱을 낀 의자에 앉아 어둑해진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며 그 시간은 또 어떻게 말해줄지 궁금한 그 사람을. 그날, 나는 옥상에 앉아 많은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2016년 겨울, 당인리발전소길의 어느 카페






올 겨울, 왜 의자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와 그녀는 10개월을, 그녀와 그녀는 8개월을, 그와 그녀는 3개월을 서로의 시간에 섞이지 못한 채 지냈고,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지나 이제 막 함께하게 될 순간이었다. 합정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내가 약속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다음에 도착한 친구는 내가 앉은 의자가 마음에 든다며 나를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다음에, 또 그다음에 온 친구들도 저마다 난 여기, 난 여기-라는 말을 내뱉으며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서로가 만족한다는 듯, 이제야 시작이라는 듯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앉는 순간 시작되는 또 다른 시간들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모이는 순간들

같은 순간, 같은 표정
아주 많이 닮았던 시간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의자였다






그러고 보면, 의자만큼 우리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주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서로에게 조금씩 더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도.













앞으로의 작은 조각들은, 이 곳에서 함께 나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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