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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Nov 04. 2022

다정한 할아버지들

 내과나 정형외과를 낀 약국들의 연령층은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약사들 마다 선호하는 연령층이 있는데 나는 소아과 밑에서 일하며 질려버렸기 때문에 차라리 연령층이 높은 사람들이 오가는 약국이 더 낫다. 그러나 노인 연령층을 상대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친구들도 많다.

 일단, 가격에 아주 민감하고 서비스 드링크를 바라거나, 받아간 약 안 받았다고 우기거나, 막무가내로 화내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 또래에서의 할아버지 세대들은 전시를 겪고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이 목적인 삶을 사신 분들이 많아 여유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다정한 할머니들은 많지만 다정한 할아버지는 나도 살면서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부터 할아버지들은 박카스 값 100원에 성내고 욕하는 이미지로 박히기도 했었으니까.


 지금 일하는 곳도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오래 일하다 보니 다정한 할아버지들도 많이 만난다. 친절한 환자를 만나면 나도 기분이 좋지만 그 친절한 사람이 할아버지라면 기분이 묘할 때도 있다. 저렇게 깔끔하고 번듯하고 교양 있으면서 여유 있는 할아버지는 그 시대에 어떤 삶을 사셨을까? 대부분 사람의 다정함과 친절함은 그 가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다정하셨을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


 인상이 너무 좋으셨던, 93세라고 하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연고를 추천만 해도 엄지 척하며 우리 약사님이 설명을 잘해줘서 나는 오늘 아주 행운이라고 함박웃음을 짓고 가셨다. 조그마한 표정만 지어도 할아버지의 얼굴은 자연스레 웃는 얼굴이 되었는데, 나는 그때 비로소 왜 얼굴 주름이 살아온 삶을 대변해준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1주일마다 안약을 타러 오시는 90세 할아버지는 항상 기다리시는 동안 조용히 영자 신문을 읽으신다. 그리고 약을 받을 땐 한참 손녀뻘인 나에게도 감사하다고 목례를 하고 가신다.

 처음에 와서 일하는 지금까지 2년 동안 눈에 띄게 치매가 진행되는 게 보이는 할아버지는 아무리 눈에 초점이 희미해져도 감사 인사는 잊지 않으신다. 할아버지가 혼자 약국 오는 길이 위태로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고집불통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할아버지들이 더 많기는 하다. 지난하고 치열하게 보낸 세월을 발판 삼아 호통과 명령이 디폴트인 사람들 속에서, 같은 세월을 보냈음에도 다정함을 가지는 할아버지들은 더 단단하고 빛나 보인다. 땅거미 지는 나이까지 삶이 켜켜이 쌓여와서, 한참 어린 내 눈에도 어떤 사람인지 다 드러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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