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by 정주희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직업. 웨딩플래너란 그런 직업이다.

반복해서 출발선상에 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함께, 다시 출발하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쩌다가 책을 내게 되었냐"이다.

가끔은 "책 내는 데 얼마 들었냐"는 황당한 질문도 있었다.

아.. 그래, 웨딩 장르 책이란 것도 흔치 않은데 나처럼 전문작가도 아닌 사람이 책을 꾸준히 내고 있으니

궁금하겠구나.. 싶다. 나도 내 책이 없을 땐 누구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부러웠으니까, 신기했으니까... 가끔씩 출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포부를 얘기하는 신랑, 신부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랬든, 전문 작가가 아닌 사람이 자신의 책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2010년 첫 출판을 하고 지금까지 총 3권의 책을 낳았던 출간기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나도 그 세월이 꿈같다. 돌이켜보면서 아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할 것이라 기대된다.

혹시 인터넷이란 특성을 살려 내 이야기가 흘러 흘러 꿈은 꾸되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용기 없는 자들에게 닿는다면. 용기를 내라고, 당장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동안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책을 쓰고 싶은 마음에 그런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을 닥치는 대로 봤었다.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고 내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그때의 내가 지금 3권의 책을 세상에 내놨고 네 번째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것을 본다면 과거의 나는 좀 덜 힘들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그게 인생의 매력이라고 치자.

이건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 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방황한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내 방황은 언제부터 일까? 음...

어릴 때부터 책을 아주 좋아하는 꼬마였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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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가 간신히 한글을 깨치자마자세계위인전기를 만화책 부터 시작해서 동화책으로 만들어진 것 까지 주입식으로 퍼부었다. 나이팅게일, 파브르, 전봉준, 세종대왕, 슈베르트 국적도 장르도 마구 바꿔가며 읽고 또 읽으며 그 세계에 빠져들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발 좀 나가서도 놀아라, 라는 흔치 않은 꾸지람을 들어가며 말이다.


정확한 내용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위인전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는"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등등등...

그런 책을 주입식으로 읽어서 일까? 난 불가능 인지불능자로 자라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궁리하고 꼭 저질러 본다. 물론,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냥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난 추진력과 실행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또 그렇지 않다. 포기도 빠르고 싫증은 더 빠르다. 열심히 해놓고도 도저히 내 능력 밖이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고 상처받기도 부지기수.


그러나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고 싶다"라는 생각뿐, 못 할 것 같다.. 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면서 한심해하는 그런 류의 인간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도 에너지도 낭비하면서 나이 먹어가고 있다. 내가 그런 류의 인간이기 때문에 내 손발은 엄청 고생을 하고 항상 성장이 더디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서 해도 쉬이 익숙해지지 못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능숙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내 책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민이 끝나지 않는 인간이어서.


조금 더 커서 상명사대부속여자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연극도 하고 서울예대 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창작에 대한 자연스러운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슨 직업을 갖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멀고 먼 남의 얘기처럼 여기면서 천천히 그렇게 나이만 먹어가던 20대 중반에 전공을 살려 동영상 제작 일을 하다가 웨딩판을 알게 되고 그러다가 우연히 (어쩌면 운명적으로) 웨딩플래너가 되었다.


20대 후반이 되서야 처음으로 직장인이 되고 조직원으로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몇 년을 보냈다.

여자들이 많은 웨딩컨설팅회사에서 처음 듣는 얘기들, 처음 느끼는 재미들을 느끼며 살아가면서도

나 다운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마치 주문같은, 일년에 두 번씩 가는 여행때문이라 믿는다.

여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가끔은 친구랑 함께 가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혼자 , 매 년 영화제를 찾았다.

온통 세속적인 것에 푹~ 절어있다가도 온전히 혼자가 되어 영화제를 찾아

며칠 동안 영화 보고 또 영화 보고 끄적이고 또 끄적이다 보면 다시, 청춘의 정주희가 되어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화제 여행을 다니면서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혼자 가는 타지로의 여행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없어 방황하는 청춘이라면

당장 홀로 여행을 떠날 것을 권하는 바!



월급에 노예로 잘 살아가는 듯싶었으나 이대로 남들 따라 살아도 될까? 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미치겠고 이대로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눈물을 철철 흘리기도 하고.

30대씩이나 되었는데 멈춰서 살고 있는 나 답지 않은 인생에 그야말라고 미쳐버릴 것 같은 깜깜한 불만족의 계절이 와버렸다.


한 마디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달라지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 내가 살고 싶은 길을 찾고 싶었다.


보통 직장인인 30대 여자가 저런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질 때.. 무엇을 생각할까?

난, 위에서 언급했듯 대책 없는 성격 때문에

바로 회사를 그만 때려치워버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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