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을 감싼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마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뜨거운 입술이 집요하게 내 심장을 휘젓고 있었다.
온몸이 굳어 당황했던 난 어느새, 그의 리드에 따라가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와의 키스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가 입술을 떼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몽롱한 듯 살짝 풀려있는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강렬하게 빛을 내고 있다.
그 분위기에 취해 긴 대화를 하듯, 그와 눈빛으로 교감을 나누었다.
잠시 후, 그의 옆에 누워 그의 팔베개를 베고 손을 맞잡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준다.
"꿈인 줄 알았어. 예랑씨가 와준 게 또 꿈인 줄 알고.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요? 난 아픈 줄도 모르고 오해할 뻔했잖아."
"왜? 내가 사라졌을까 봐? 설마......"
"어떻게 얼마나 아팠던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
그가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당신이 날 이렇게 볼까 봐 얘기 안 한 거야. 불안해할까 봐. 이렇게 걱정할까 봐."
"무경씨야말로 바보야. 이게 당연한 거예요. 무경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불안하고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다음에 또 그러면 정말 화낼 거야."
"알았어. 잘못했어. 안 그럴게. 인상 좀 펴. 무서워."
그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손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그가 그런 내 손을 잡더니 꼭 끌어안는다.
그의 품에 안겨있던 난, 잠시 후,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런 거예요? 시창씨 말로는 한 번씩 안 좋다고 하던데, 얘기해줄 수 있어요?"
그가 조용히 한 숨을 내쉬더니 힘겹게 말을 꺼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릴 때 그 납치사건 이후 시작된 것 같아. 한 번씩 악몽을 꾸는데, 항상 난 쫓기고 있고, 어떤 남자가 쫓아오고, 그렇게 도망 다니다가 결국 남자한테 잡히는데 내가 죽는 것 같아. 잠이 깰 때까지 그 상황이 무한반복이 되고. 그런 날이 있을 때면, 항상, 꼭 지독한 몸살을 겪는 것처럼 며칠을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아."
"치료는? 치료는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검사도 받고, 상담도 하고, 최면치료까지 해 봤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어. 마치 그 꿈이 어딘가에서 봉인된 것처럼, 안 열린다고 했어.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게 안되나 봐. 나한테 열쇠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샌 괜찮아서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또 같은 일이 생겼던 거야."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뭔가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표정에서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머리칼을 만지며 그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예요.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요. 내가 옆에 있을게."
다독거리듯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자, 그가 내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대며 눈을 감았다. 그의 호흡이 점점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집 앞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서 죽을 끓였다.
마치, 예전에 무경이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정성스럽게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죽이 거의 완성이 되어갈 즈음, 무경이 방에서 나왔는데 낮에 보니 더욱 핼쑥해 보였다.
그를 보며 방긋 웃으며,
"앉아있어요. 거의 다 돼가요."
그가 주방을 둘러본다. 야채와 과일이 든 장바구니를 쳐다보던 그가 신기한 듯 묻는다.
"그새 나갔다 왔어? 자다가 없어져서 놀랬잖아."
"칫. 거짓말."
"진짜라니깐."
그에게 가볍게 눈을 흘기고는, 그릇에 죽을 담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숟가락을 내밀며 밑반찬과 깎아놓은 과일을 올려놓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먹어봐요. 간은 안 했어요. 싱겁게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가 감동스러운 얼굴로 죽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방긋 웃는다.
"맛있어."
"정말? 다행이다."
죽을 먹던 그가 잠시 후
"그런데, 예랑씨 말 편하게 하자고 자기가 먼저 그래 놓고, 왜 또 존댓말 써?"
"아, 맞다. 그랬지. 그게 나도 가끔 어색해서."
"그것 봐. 그럴 줄 알았어. 그냥 자연스럽게 해요. 뭐든지 천천히 하나씩...... 편해질 때까지."
그의 말에 수즙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을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밥을 같이 먹고, 그가 잠이 든 모습을 지켜봐주고, 그가 점점 기운을 차리면서 그와 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식사 후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문득 생각이 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부모님이, 제주도에 계시다고 했지?"
"응. 작년에 아빠가 은퇴하시고 두 분 다 귀향을 원하셔서 내려가셨어. 아빠 고향이 제주도라."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자기는 안 갔어?"
"음...... 고민을 했는데, 그때는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 뭔가 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따라가지 않았던 것 같아."
"그 길이 어떤 거였는데? 요가?"
그의 질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분명 요가 자격증을 따려고 서울에 남은 것은 맞지만, 그게 내 목표의 전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저으며,
"원래, 무용했어요. 요가 배우기 전에. 전공도 무용이었고. 그런데, 졸업 후 못하겠더라고. 실력도 없는 것 같고, 자신도 없고 그랬어요."
그가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데,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자상함이 느껴졌다.
"자신을 믿어봐요. 미리 겁먹고 포기하지 말고,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그 꿈을 쫓아. 그럼 스스로 찾을 거예요.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그 끝이 어디인지만 알고 있다면, 자기는 나침반만 챙기면 돼요. 믿어줘요 스스로를. 난 예랑씨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자기는 누구보다 열정이 있고, 밝은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니깐."
그의 따뜻한 눈빛에 잠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사람은 내가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날 더 이해해주고 배려를 하는구나. 오히려 내 자신보다 날 더 아껴주는 사람이구나.
다행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가 내 곁에 있어주어서. 정말 다행이야.
오랜 시간 스스로 쌓은 벽 앞에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에 빠져 헤매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어둠 속에 갇혀, 그 긴 시간을 혼자 외롭게 웅크리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그가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
할 수 있다고. 기운 내라고. 다시 일어나라고.
신기하게 그것만으로도......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만으로도 '용기'라는 샘물이 가슴속에서 솟아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