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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Sep 10. 2021

소소한 산책의 행복

나만의 행복 레시피

나는 틈틈이 걷는다.


동네를 걷고, 쇼핑몰을 걷고, 안양천을 걷고, 낯선 여행지를 걷고, 길을 걷는다. 목적지를 정해 놓고 걷기도 하고, 무작정 걷기도 한다. 남편과 둘이 걸을 때도 있고, 애들과 함께 우르르 걸을 때도 있고, 혼자 조용히 걸을 때도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파워워킹으로 빠르게 걷기도 하고 정신적 휴식을 위해 천천히 걷기도 한다. 야외에서 걷기도 하고, 트레이드밀 위를 걷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형태의 걷기를 좋아한다. 내가 평소 구두보다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 이유다. 굽이 높은 구두는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든지, 전국 도보여행 같이 극한의 걷기가 버킷리스트에 있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트레킹을 딱히 즐기지도 않는다. 나는 적당히 게으른 편으로 어떤 거창한 목표를 두고 걷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걷는 걸 좋아한다. 소확행’의 일종으로 소소한 산책의 행복, ‘소산행’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앞에서 나열한 여러 형태의 걷기 중에서 나의 가장 큰 ‘소산행’을 위한 꿀조합을 소개하려 한다. 나만의 ‘소산행 레시피’쯤 되겠다.


나는 혼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 근처 안양천으로 간다. 안양천을 따라 걷다 보면 도림천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때 나는 이 쪽 저 쪽 어느 쪽이든 갈 자유가 있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누군가도 없기에 때문이다.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처럼 ‘변덕이 이끄는 대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발길을 옮기면 그뿐.


도림천은 좁고 아기자기해서 좋고, 안양천은 넓고 탁 트여서 좋다.. 어디까지 갈지는 내 마음이지만 나도 모른다. 마음이 시키면 더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돌아설 수도 있다.


시간의 구애 없이 천천히 걷고 또 걷는다. 평소에는 빠르게 지나치느라 뭉개져 보이던 풍경들 하나하나가 제각각 선명하게 보인다. 저 멀리 풍경을 풀샷으로도 보고, 바로 발밑 아래 풀꽃을 클로즈업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다 뜻밖의 선물을 만나곤  한다. 낮에 뜬 달이라든지, 잡풀 속에서 빼꼼히 고개를 든 작은 풀꽃이라든지, 바람에 실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계절의 냄새가 그렇다.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노래가 마치 영화 속 BGM처럼 흐른다.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완성된다. 짜증 나는 일도, 힘든 일도 그 순간만큼은 잊는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단순해진다.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고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차오른다.완전한 자유이자, 온전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소산행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

- 니체 -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봄이나,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나는 운동화 끈을 조이고 언제든 걸을 준비를 한다. 어제 어디서 나의 로망과 마주할지도 모르니 나는 기꺼이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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