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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Aug 19. 2021

바다로 가자!

완벽했던 당일치기 강릉 여행기

우리 집엔 여행용품으로 가득한 커다란 서랍이 하나 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열어볼 일 없던 서랍을 오랜만에 정리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영복과 물안경, 워터슈즈, 비치타월 등을 모아둔 가방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 애들도 많이 커서 수영복과 워터슈즈가 맞을까 싶었다. 워터슈즈를 꺼내자 하얀 모래가 스스륵 쏟아졌다. 평소 같으면 치울 생각에 짜증부터 앞섰겠지만, 흩어진 모래 알갱이들을 손바닥으로 쓸고,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눌러 모으며 추억에 잠겼다.


‘언제 적 모래지? 어디 모래일까? 마지막으로 워터슈즈를 신고 바다에서 제대로 놀았던 게 언제였더라? 그게 어디였더라?’


문득 바다가 그리워졌다. 짠내와 비릿함이 뒤섞인 바다내음과 포말로 부서지는 하얀 파도, 철썩이는 파도 소리, 내 발을 시원하게 감 싸돌고 빠져나가는 바닷물, 내 발등을 덮는 모래의 이질감 등등.


‘그래, 바다로 가자!’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 짐을 챙기고 지체 없이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 

연휴의 끝자락이라 엄청 막힐 것을 예상하고도 호기롭게 출발을 감행했다. 당일치기로 바다만 보고 오자! 급하게 검색 한번 대충 해 보고 목적지를 정했다. 강원도 강릉의 사근진해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속초는 너무 많이 갔었고, 삼척은 좀 더 멀고, 그 중간쯤인 강릉이면 어떨까 싶었다. 강릉에서도 좀 한적한 해변을 찾다 보니 사근진 해변이 나왔다. 내비게이션에 사근진 해변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무작정 떠났다. 역시나 도로는 마지막 휴가 행렬로 가득했다. 최악의 교통체증이었다.


오후 2시. 

휴게소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 간단히 먹을거리를 사서 차 안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향해 고고! 교통상황이 조금씩 풀렸다. 강릉 중앙시장에 들러 저녁거리로 먹을 것들을 빠르게 사들고 사근진 해변으로 향했다. 해 질 무렵 바다를 상상하며 늦게까지 모래사장에서 바다나 실컷 구경하다 가야지!


오후 5시 45분. 

집에서 출반 한 지 7시간 45분 만에 우리는 바다와 마주했다. 아니 영접했다. 공기는 습기로 촉촉했고, 하늘은 흐렸다. 파도도 제법 높았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시장에서 사 온 오징어순대, 닭강정, 떡볶이 등을 펼쳤다.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바다를 바라보며 일단 저녁부터 먹었다. 그리고 여유 있게 뭉개다 가야지... 그런데 음식이 바닥을 보일 즈음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 6시 15분.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다시 차에 탔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며 허탈해했다.


“한 30분 있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일단 바다부터 볼 걸, 후회가 됐다. 어차피 밥이야 차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며 아이들이 아쉬워했다. 하루 종일 차를 탄 기억뿐이었는데 또다시 차를 타야 한다니… 헛웃음만 났다. 허허… 계속 웃다 보니 어느새 하하하! 우리 모두 웃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바다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목표를 이뤘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비록 바다를 사진에 마음껏 담진 못했지만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으니 그걸로 됐다. 지나고 보면 순조롭지 않았던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법. 어설프고 좌충우돌한 데다 운까지 없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여행이었다. 결국 완벽했던 당일치기 여행으로 추억될 테니. 역시 떠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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