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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Apr 11. 2024

기도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기도할까> 옥한흠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날마다 어떤 기도를 드리십니까?


이 질문을 보자 내가 매일 드리는 기도의 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개인적 필요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엔 나라를 위한 기도도ᆢ다니던 교회의 기도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내 모든 기도가 나 자신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새교회에 등록 후 어영부영 하다가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고 내 삶도 힘들었었으며 마침 교회에 진부함을 느끼던 차에 집에서 예배드리자 ᆢ잘됐다 싶었다.  말씀 읽고 기도하고 ᆢ마치 세상의 종말을 보듯 하였기에 나름 열심히 기도했다.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 ᆢ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는 예전에 주님께서 내게 특별히 주신

"너는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는

말씀은 저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아버지의 의와 나라'가 과연 무엇인지 찾고 찾으면서 기도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교회내 직분.헌금.예배.모임 등등에만 매달리다가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책에 렇게 적혀있었다.

'날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구하는 기도는 저질이다'

그제서야 주님이 내게 주신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말씀 의미를 또 일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당시 저자의 말처럼 저질스런 기도를 지속하였던거다.

주님 제가 하는 학원이 잘 되게 해주세요.

동생 사업이 잘 되게 ᆢ아버지가 구원받게 ᆢ딸이 건강하게 ᆢ등등

그러나 이런 기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저자의 글에 의하면 나는 기도 순서를 바꿔야 했던 것이었다. 

그 '먼저'  라는 단어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 성경 속의 단어 하나는 얼마나 의미가  큰가 ᆢ

내 기도의 최우선 순위는 나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구했어야 하는데 내 기도는 늘 내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었던거다. 그래서 내 기도를 듣던 주님께서 개인적으로 들려주신 것이다.


" 얘야. 기도순서가 틀려 ᆢ먼저 구할 것이 있단다ᆢ"라고.


어디 그뿐일까?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적이 없었다. 기도시작과 동시에 나의 푸념과 하소연이 시작된다. 안되면 질질 짜기까지 하면서ᆢ

나는  그때 이렇게 기도해야 했다.

주님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게무엇인지요? 라고 지속적으로

여쭸어야 했는데 성미도 급하고 인내심 없이 하나님의 응답대신 주변 사람들ㅡ신앙생활 오래한ㅡ에게 물어봤던 것이다.

당연히 지인분들은 교회일 먼저. 예배 먼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었기에 매주 월요일 빼고는 교회에 나갔다.

구역모임. 성경공부. 수요예배. 기도회. 금요예배. 주일예배.... 정말 쉴 틈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날이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고 열정이 식어드는지... 는 그것이 기도부족이라 여기고 또 새벽기도는 얼마나 열심히 다녔던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도와 말씀 읽기는 지금 돌이켜 봐도 후회 없다. 그렇지만 주일 예배만으로도 안돼서 수요일. 금요일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억지로 예배에 갔던 날들은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배 자체가 부질없음이 아니라 적절히 시간 배분을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 것 같아서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가지고 하나하나 설명해 다.

내용이 다 깊고 좋았다.

하나님께 직접 받았던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이 책을 보기 전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던 점도 이 책의 내용과 부합되어 좋았다.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본인의 희생을 각오하는 것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은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곳이다.

그런데 타인이 잘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진정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역시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타인을 위한 중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슬슬 되는 중이다. 그 예로 이번 아버지 장례식 때 먼 길을 와서 꼬박 같이 밤을 새운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6촌 오빠 부부, 외가쪽 삼촌까지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특히 외가쪽 삼촌은 돈밖에 모르는 허풍쟁이에 이기적이라  싫어하지만  기도한다. 기도하다보니 밉지않다.

 나가 아닌 타인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는 지금의 나는 믿기 전의 내모습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악담이 가득했던 가 하나님 안에서 그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고 울고 웃으며 여기까지 왔다.

내 안의 성령께서 이제는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자로 세우고 계신것이다.

 

주기도문을 풀어서 설교해주던 목사님들의 책을 읽기도 하고 직접 들은 적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어떻게 기도할 지를 주님이 주신 주기도문을 가지고 상세히 글로 풀어낸 이 책은 과연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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