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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Aug 10. 2023

결혼 축사를 하다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라 시들어가는 것


환갑을 맞은 해에 생각지 못한 결혼 축사를 하게 되었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당혹했지만 새로운 길을 걷는 신랑 신부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받아들였다. 한동안 펜을 들지 못하고 나의 결혼생활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겠다던 유명 인사를 마다하고 남편은 고등학교 은사님께 주례를 청했다. 아끼던 제자를 바라보던 자애의 눈빛과 스승 앞에서 풋풋했던 10대로 돌아가 존경심에 수줍어하던 그의 모습은 동화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그로 인해 나는 힘들 때마다 대학시절 그를 만나 결혼을 선택했던 때의 나로 돌아갔고,  그 은사님 앞에서의 순결했던 사랑의 서약을 떠올리며 흐트러진 마음을 쓸어내곤 했다.


나는 어떤 말로 힘이 되어 줄까.

기억하기 좋게 딱 한 가지만 말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역지사지, 배려하는 마음, 갈등은 항상 대화로 풀기, 함께 성장을 응원하기... 결국 지금껏 내가 가장 지키려고 노력해 온 한 가지를 쓰기로 했다.


"오늘 축사를 하게 된 신랑 어머니입니다.

양가 부모님들이 과묵하셔서 송구스럽게도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로 시작해서 하객들께 감사를 전하고 편지를 읽으며 신랑 신부의 소중한 만남과 결혼을 축복해 주었다. 본론이 시작되었다.


"언젠가 우연히 책상에서 꽃으로 된 카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신부가 직접 장미꽃을 말려서 만든 카드라더구나. 거기엔 예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지.


'우리 오랫동안 꽃처럼 살자.'



그래.. 오랫동안 꽃처럼 살고 싶은, 아름답고 소중한 너희 둘의 결혼에 엄마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구나.

사랑은 화분의 꽃과 같아서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고. 그러니까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라 시들어가는 거라서 물을 주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다. 항상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언제 잘 웃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살피면서 늘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 바란다. 관계가 좋으면 자주 웃지만, 관계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게 웃음이니까.


그래서 너무나 부탁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이 한 가지만은 꼭 지켜달라고 당부하고 싶구나.

전날 아무리 마음 상한 일이 있었더라도 아침에 출근할 땐 서로 웃는 얼굴을 보여주라는 거야.

그럴 수 있겠니? (즉답을 받고, 그렇게 쉬운 일 아니라며 한 번 더 물어서 하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인간이 피울 수 있는 유일한 꽃이 바로 웃음꽃이라고 해. 돈이 있든 없든,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웃는 얼굴이야. 부모로서도 자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만큼 이 세상에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단다."


다시 한번 먼 길을 와주신 하객분들께 감사하고 떨리는 축사를 마쳤다. 나를 보는 남편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들에게선 축사가 좋았다며 감사의 문자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처음 그 순간을 기억해 내고 서로 웃음 지을 수 있다면 내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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