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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Jan 29. 2024

15. 시그니처가 필요해

<행복의 조건>

15. 시그니처가 필요해

배정환


그동안 도성과 전략적으로 이야기 나누었던 시그니처 메뉴를 선보이기로 했다. 책으로 카페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메뉴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맞서는 방법은 독특함이어야 했다. 태성은 이름 있는 카페들을 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 도성도 자기 카페인 것처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수민이도 친구들과 인별과 너튜브를 이용하여 독특한 카페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도성 씨 이제 아르바이트 말고 직원으로 일해보지 않을래? 자네 같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데."

"사장님 제의야 고맙지만,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열심히 도울게요."

공무원 준비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바쁠 텐데, 그래도 카페를 위해 시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일단 각자가 메뉴 하나씩 선보이기로 했다. 태성은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위해 아몬드 우유를 넣은 라테와 디카페인 라테를 만들었다. 유명한 카페에 가서 맛을 보고 반해 한동안 레시피를 만들어본 덕분에 고소한 풍미를 탄생시켰다. 

"맛이 어때?"

"사장님 이거 좋은데요. 요즘은 디카페인 찾는 분들도 많으니 나름 통하겠어요."

옆에서 수민이도 거들었다. 

"학생들도 많이 오니까, 디카페인 좋아요."

일단 멤버들이 좋다고 하니 태성은 마음이 놓였다. 주방에서 도성이 노란 음료를 가지고 나왔다. 

"요즘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없잖아요. 시원하게 즐길 있는 무알코올 하이볼을 만들어봤습니다."

"이런 거 팔아도 되나?"

"무알콜이라서 괜찮을 겁니다. 그냥 음료니까요."

유자를 이용한 탄산이 나름 시원하고 청량했다. 술집은 아니지만 기분정도는 낼 수 있으니 좋아 보였다. 콘서트 모임에서 많이 나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일단 이름을 멋지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수민이는 뭘 선보일래?"

"아빠 잠시만요. 저는 아무래도 친구들과 어울릴만한 것으로 고민해 봤어요."

잠시 후 수민이가 두 잔의 음료를 가지고 나왔다. 멀건 액체로 보이는 음료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게 뭐니?

"제가 요즘 트렌드를 살펴봤는데요. 지금은 단백질이 대세예요. 첫 번째 음료는 단백질 파우더와 에스프레소를 이용해서 만든 커피고요. 다른 하나는 단백질과 고구마, 바나나를 이용한 라테예요."

"수민아 일단, 만들기 복잡하면 안 돼, 복잡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이건 간단해요. 단백질 파우더가 생명인데요. 시중에 맛이 첨가되지 않은 제품이 있으니 고유의 맛을 해치지 않고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수민의 설명을 들어보니 믹서기만 두대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으니, 나름 괜찮았다. 도성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사장님 3일은 시그니처 메뉴 선보이는 날로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냥 메뉴에 추가해서는 알리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거 좋은데! 그런데 아메리카노를 찾는 분들에게는 뭐라 하지?"

"3일은 50% 할인 가격으로 내놓고 알려보면 좋겠는데요."

"수민이 생각은 어때?"

수민이도 동의했다. 수민이가 가게 앞에 놓일 간판에 행사 내용을 써넣었다. 3일 정도 메뉴를 알리는 날로 잡으면 어느 정도 손에 익숙해질 듯도 싶었다. 일단 남들과 다른 카페로 재 탄생하지 않으면 프랜차이즈와 대형 카페에 밀려 살아남기 어려웠다. 


다음날 가게가 오픈하고 적극적으로 신메뉴를 알렸다. 원래 오던 손님에게도 50%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제공한다고 하니 흔쾌히 맛을 보기 시작했다. 수민이는 손님에게 단백질을 설명했다.

"손님, 이건 식물성 단백질이라서 살찌는 거 고민 안 하셔도 됩니다. 맛은 어떠세요?"

"커피 본연의 맛은 아니지만, 나름 고소하고 좋은데요. 건강한 느낌이 많이 나네요. 설명을 듣고 마셔서 그런가?"

평소 독서모임으로 수민이를 좋게 봐주셨던 손님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직장인으로 보이던 분은 하이볼을 마시면서 웃었다.

"사장님 이거 먹고 취하는 건 아니죠? 낮술 하는 느낌이 나네요. 회사에서 짤리면 사장님 책임입니다."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메뉴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태성이 선보인 아몬드라테가 꼴찌였다. 그나마 디카페인은 가끔 찾는 분들이 계셨지만 대부분 단백질을 선호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단백질 트렌드가 맞기 했다. 젊은 사람들 감각을 따라가는 게 맞아 보였다.


3일간의 신메뉴 소개가 끝나고 나니 제법 찾는 손님이 많아졌다. 자신만의 메뉴가 생겨서 그런지 태성은 손님에게 말 거는 횟수도 늘었다. 지난번 에스프레소 카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고객과 대화를 나누기를 꾸준히 연습한 결과였다. 커피만 잘 만든다고 사람들이 찾아주는 건 아니었다. 먼저 인사하고 기분 좋은 멘트를 던져주는 게 핵심이다. 도성은 원래 타고난 성향이라 사람들과 말을 잘하겠지만, 태성은 대화를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새로 나온 음악도 듣고, 영화도 봤다. 책 내용을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역시 연습은 배신하지 않았다.


카페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는 차 안에서 수민이가 물었다. 

"아빠, 직장 다니던 모습이 이제 다 사라졌는데. 이런 아빠 모습 낯설지만 좋다."

수민이가 그동안 어떻게 아빠를 생각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는 듯했다. 

"내가 그렇게 뻣뻣했니?"

"아무래도 그렇지. 남자 혼자 살면서 부드러울 일이 뭐 있겠어."

"엄마랑 연락은 아직도 자주 하지?"

"아빠가 싫어하니까 얘기 안 할래."

"아빠 대신에 수민이가 엄마에게 잘해줘라."

"그런데, 아빠는 엄마가 일하는 거 왜 그렇게 싫어했어? 결국 아빠도 엄마 따라갈 거면서."

수민이의 말이 심장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잖아도 거울에 비친 태성에게서 사업 시작하던 은지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딸에게 들킨 것만 같았다.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졌다. 왜 그렇게 은지를 반대했을까? 어두운 도로를 달려가며 태성은 대답하기 힘든 질문에 답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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