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대니 샤피로의 책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에서는 그녀의 작가 친구가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고 되뇌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완성한 일화가 나온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일에 영감을 받은 대니 샤피로 역시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자세로 마감의 위기에 대처했고, 결국 맡은 일을 해냈다고 한다. '짧고 나쁜 책'을 써도 좋다는 마음.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자세. 결국, 쓰고 봐야 한다는 말이다.
| 일단 최악의 문장이라도 써보자고 생각했다. 뭔가를 쓰겠다고 마음만 먹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첫 장편을 출간하고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소설가로 살고 싶다면 소설을 써야 하고 시인으로 살고 싶다면 시를 써야 한다. 뭔가를 썼었던 것은 추억일 뿐, 현재는 아니다. 회사를 다녔다고 해서 지금도 회사원은 아니듯이 책을 냈었다고 해서 다 작가가 아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겠다고 말만 하고 있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소설 쓰기를 계획한 사람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란 거다.
|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는 하루가 점점 늘고 있었다. 생각만큼 공허한 것이 있을까. 생각은 형체가 없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다.
| 쓰고 싶다고 하면서 쓰기를 미룬다. 설거지만 하고. 냉장고 정리만 하고. 안 하던 운동 좀 하고. 세탁기 좀 돌리고. 엄마한테 안부 전화 좀 하고. 친구랑 카톡 좀 하고. 커피 한 잔만 하고. 고양이 좀 쓰다듬고. 낮잠도 자고. 산책도 하고. 이렇게 글 쓰러 나와서도 창 밖만 보고 있다.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 것일까.
| 계속 첫 문장을 고쳐 쓴다. 도무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가 않는다. 대니 샤피로의 친구처럼 짧고 나쁜 책은커녕 짧고 나쁜 문장도 겨우 쓰고 있다. 오늘부터는 최악의 문장을 써보자.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최악을 쓰려는 자세도 의도고, 노력이지. 그러니 그냥 쓰자. '그냥'에 이유는 없지만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