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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여.

2장 : 그가 말했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포위되는 거라고

by 양율




어두운 새벽길을 라이트로 켜 달린다. 폭설이 내려 앞이 보이지 않아 가끔 와이퍼를 좌우로 흔들어 눈을 깜빡여 본다. 이산화탄소가 가득해 졸림이 밀려온다. 잠이 들면 안 된다. 앞으로 100km. 대구로 향하는 길이다. 라디오를 켜니 영화 <로마>를 도마에 두고 영화평론가가 미장센에 대해, 멕시코의 혁명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말한다.


난 침침한 운전대를 잡고 사랑을 이빨로 곱씹으며 혀로 장중한 혁명을 다셔본다.


눈이 더 많이 내리자 암흑 같은 고속도로 위에서도 다들 50km로 속도를 낮춰 비상등을 켠다. 고속도로는 차만이 지나가는 도로가 아니었단 걸 깨닫는다. 차체 안의 심장이 뛰어낸다. 폭설은 사람이 사람을 지켜내는 걸 보았다.


침묵이 지배하는 곳에서 따사롭기까지 한 붉은 점이 점멸하는 곳이 다름 아닌 효율과 기계문명의 준거인 고속도로 위였다니. 내 심장 또한 붉어진다.


도착한 장례식장에서도 눈은 멈추지 않았다. 화장터는 바쁘게 연기를 낸다. 난 회색 연기와 함께 그늘진 담배를 피웠다.


돌아가신 큰아버지에 대해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어릴 적 처음 어머니에게 꽃을 선물한 그날 내게 헤어지는 부모님이 야속해 <도와달라고> 동정을 구걸했다. 큰아버지는 날 바라보고는 <내가 어쩌란 말이냐>고 말하곤 쓰러지듯이 운전대를 잡아 액셀을 밟아 도로를 떠났다.


난 백미러 속에서 줌아웃 되어 소멸되었던 작은 체구의 소실점이었다.


그 소실점은 30년 가까이 지나 장성한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 LED 빛을 내기도 하고 야속한 소리도 내뱉으며, 사랑에 대해 서툴게 논하기도 하는 그때 당신 나이대의 사람이 되었다.


사랑은 폭설 위에서 쉽게 질겅대는 존재였으며 소실점이 늘어나다 끊어지는 하나의 점이기도 모래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자주 사랑 속에서 질투하였고, 내 첫사랑의 끝에도 폭설이 왔다. 내게 사랑은 내게 늘 미스터리 영화 같았다.


당신과 헤어진 담배 연기가 짙다.


이별한 다음 날엔 여전히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하고 코트 깃을 세워 노트북을 지참해 카페에 간다. 뜨거운 김이 피워내는 슬픔을 글로 담아내면 곧 한 잔의 글이 완성된다. 미흡한 영혼에 알량한 만족을 빚어내며 당신을 애써 외면하려는 술수이다.


가상한 처세술 보다 고상하게 날 차려 입히는 일 보다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은 홀로 술을 마시는 일이다. 헝클어진 머리와 늘어난 트레이닝복으로, 삼만 원짜리 안경을 끼고 싸구려 영화를 보는 일이다. 폰을 폈다 쥐었다. 던졌다. 켜봤다. 소주가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어 술로 하얀 함박눈이 되는 일이다.


난 사랑을 하는 일을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몇 번의 거창한 사랑을 했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요, 지독히 가난한 사랑을 했다 하여 성인군자가 되는 것도 아닐 테다. 사랑에는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만큼이나 요상한 성질이 하나 있다는 걸 알았는데, 사랑을 꾸미려 들자마자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쉽게 훨훨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당신을 진실로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가 사랑한 당신의 모습은 눈이 녹듯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장례를 치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서도 눈은 멈추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사랑을 완벽히 섭렵한 것은 아님에 분명하지만, 오히려 지금의 나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부모님은 그때의 지금 보다 더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잘 살고 있다. 내 빈곤한 상상이 사랑을 짓누른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고통으로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은 꿈만 같고 멋들어진 것이야만 하는 것이라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궁전을 지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은 누추한 상점이어서 당신이 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거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 당신의 속이 이랬었군요. 가여웠네요. 라고 수월히 혀끝으로 내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출근길에 싸락눈이 내려 운전을 했다. 고된 연기가 앞 차에서 내 차창으로 밀려든다. 그 차의 심장 소리가 들릴 뻔한다. 그렇게 사랑도 쉽게 내게 오면 좋으련만 맑은 날씨엔, 근사한 날엔, 화창한 날엔 당신의 사랑이 모두 녹아버릴 것만 같다. 그럴 거면 봄이 오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차라리 평생 그런 겨울이고 싶다. 몇 날 며칠은 겨울에 구속된 채 씻지 않은 사랑의 민낯을 바라보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린 자기만의 사랑의 정의를 말한다.


자기에게 사랑이란 사고라고 말했던 가수가 있었다. 그 말에 덧붙여 내 입 안에 맴도는 말이 있다. 우린 TV에서 노래에서 거창한 마음으로, 희망과 낭만으로 매일 사랑을 논하지만 사실 사랑은 어쩌면 내가 가진 가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폭설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 차분히 비상등을 켜는 일일 수도 있다. 씻어내지 않아 체취 묻은 더럽고 진한 붉음일 수도 있다.


너의 고운 얼굴이, 너의 좋은 거처가 사랑이 아님에 분명하다. 사랑은 거창히 꾸민 당신 안에 웅크린 작은 어깨를 알아봐 주는 일이다. 당신을 지켜왔다고 믿은 가시덩굴 뒤 당신의 빈곤한 날씨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잘 살아라 잘 지내라 해놓곤 가지 말라고 핏속으로 소리치는 당신의 오래된 눈물과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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