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그가 말했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포위되는 거라고
3분짜리 노래를 듣습니다. 노래가 짧아 아쉽습니다.
커튼을 열면 서울이 노을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서울에만 노을이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남해에도 있을 것이고요. 태안의 해변에도, 강원도의 숲도 다 같이 노을에 젖어가는 중일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당신을 떠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도 버젓한 노을이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마침 당신만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저녁입니다. 이별을 정산해야 합니다.
저녁거리도 미리 끓여두고요. 내일 먹을 쌀도 씻어 놓습니다. 그리움 한 두 시간으로 축나지 않음을 가늠한 탓이겠습니다. 이별이 내 속에서 행방불명되지 않게 든든히 먹어 둬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엔 몇 천개의 새로운 음악이 쏟아졌습니다. 3분짜리 짧은 노래들은 우리 모습 같습니다. 한 시간 분량의 교향곡이 아니기에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근사한 LP판은 아니었기에 좋은 인연이었다 칠 수 없는 것일까요.
수월히 포획되지 않는 마음을 사랑이라 두겠습니다. 답장 없는 그리움을 사랑이라 해보겠습니다. 오늘 밤의 일시적 정의입니다. 법규 벗어난 임시방편의 삶 하루 보내보는 날입니다.
밤이 드리워 낮의 열렬한 기세가 도산합니다.
이때다 싶어 번쩍이는 야경이 번성합니다. 하지만 난 오늘 형광등의 편리에 소속되지 않는 날이겠습니다. 거울보기 부끄러운 탓이었을까요. 어둠 속에서 내 지난날을 오래 응시합니다.
그러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정전될까 허겁지겁 촛불을 찾아 애쓰다가 그런 내가 못 미더워 고개 숙여 내 철없는 연애를 비판해봅니다.
이별에 이리 서러워하는 건 사랑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이겠습니다.
찍어 둔 사진은 쟁쟁한 행운이었으므로 현재 시제에 불화를 일으킵니다. 하여 눈 감아보려 합니다.
허면 새벽 내 마음 속에 핀 조명이, 하이라이트 조명이, 미러볼과 풋라이팅이, 레이저와 색들이 당신을 비춥니다. 내 안의 전깃줄들이 복잡해집니다. 콘센트와 멀티탭과 방전과 스파크가 내 새벽을 횡행합니다. 그러다 당신 놓칠까 바다 바람을 찾습니다. 이를테면 석탄도 으깨 먹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비춥니다.
결국 아침이 오면 손수 정의한 사랑의 소멸시효가 종료될 것입니다. 그렇게 심장에 비밀번호 하나가 새로 걸립니다.
3분짜리 음악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는 과거의 플레이리스트 한 구석 어디의 인연으로 정리될 것입니다.
커튼을 다시 열면 아침놀이 오릅니다. 오늘은 밤을 새 당신만을 생각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 그리움에 대답한다면 당신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내 마음에 도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