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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라인 단상

2025 DMZ IDFF 3일차. 그린 라인.

by Gozetto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이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3.0)


다큐멘터리에 대해 편견을 깨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레바논 내전 당시 종교와 정치에 따라 난립한 수많은 파벌의 격전지 수도 베이루트에서 살아남은 피다가 어른이 되어 당시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웠던 이들과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다라는 인물은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사건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사회적으로는 종교와 정치 등을 이유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반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질문하는 주체가 된다. 총탄이 난무하고 시체와 피, 신체가 널려있던 베이루트 당시 현장처럼 피다는 입고 있던 옷을 입고 가방을 멘 채 베이루트를 동서로 양분했던 경계선 그린 라인 주변의, 아직 격전의 상흔이 남아있는 건물에서 국민 혹은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는 이들을 만난다. 지금은 성인이지만 당시에는 아직 초등학생 밖에 안 됐던 피다는 그 스스로가 레바논 내전의 산증인이자 살아있는 내전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총을 들었던 수많은 중년 남성들과 만나는 것은 스스로를 가해자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즉,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피해자인 '가해자'를 마주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파괴적인 경험이다. 특히 국민 혹은 주민을 위해 총을 들었다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로서 인식되나 반대로 그들의 말은 결국 폭력에 의해 신체와 목숨을 잃은 이들 앞에서 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일 뿐이다.

출처. 키노라이츠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전 당시 상황을 미니어처 세트와 피규어로 재현하는 가운데 지금 피다가 입고 있는 옷과 멘 가방을 똑같이 하고 있는 피규어가 그 현장을 가로지르며 재연한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의 동화처럼 보이는 세트와 피규어는 시산혈해의 그린 라인에서 폭력의 피해자로 공포에 떠는 피해자를 재연하며 현장보다 더욱 짙은 현장감을 만들어낸다. 성인이 된 피다가 들었다 놨다 하는 피규어들은 장난감처럼 보이나 여전히 세트의 현장에서 가해자들의 총탄은 피다의 주변에 시체를 쌓는다. 카메라가 현재를 담고 있음에도 <그린 라인>의 현재는 온전히 지금 여기의 현재라기 보다 과거가 망령처럼 들러붙은 현재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적이다. 세트와 피규어는 <그린 라인>의 영화적 현실을 구축하는 것에 기반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영화적이기에 <그린 라인>의 현재는 더욱 스크린 바깥의 현실을 호명하며 현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시선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끊임없이 과거의 망령을 들추며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 흘러가는 베이루트의 현재가 잊고 있는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떠오른 현실은 피다 개인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극복하는 계기이자 가해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폭력에 대한 사죄와 함께 이후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하는 다큐멘터리의 원동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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