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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바이, 액션! 단상

2025 DMZ IDFF 3일차. 스탠바이, 액션!.

by Gozetto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한 인물의 추모로부터 모두를 엮는 연대까지(3.0)


마지막 근무 이후 어느새 약 3여년의 시간이 흐른 글쓰기 튜터 재직 시절, 매학기 초마다 고민스러웠던 글쓰기 튜터링 시간이 있었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의의 과제 중 '주장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의 과제가 있었는데 학생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쟁점 중 하나를 자유롭게 택하거나 주어진 3가지 쟁점 중 하나를 택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글을 써야 하는 과제였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어진 3가지 쟁점 중 하나를 택해 글을 썼고 그 쟁점 중 하나가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였다. 이 글쓰기 과제에 대한 튜터링이 고민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글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보다 대단히 우려스러울 정도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쟁점에 대해서 평등보다 공정의 관점에 따라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기에 문제가 있다는 방식으로,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우경화된 관점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전술한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를 택한 학생들은 100이면 100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자신들의 이동권을 침해하고 있기에 시위 자체가 공정하지 않고 그렇기에 정당하지 않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글을 썼다. 이 주장과 근거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들의 논리 저변에는 장애인들이 자신과 같은 존재이되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간과한 채, 혹은 오히려 그러한 사회적 약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심한 경우 민주주의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었다. 학생들에게 튜터링을 하면서 현재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모순점들을 집어주고 현재의 글에서는 학생이 본인을 차별주의자라 말하는 모양새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오히려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고 싶고, 실제로도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차별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권민우(주종혁 분)'처럼 장애인들이 오히려 강자라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 매번 튜터링을 하면서 씁쓸했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러한 튜터링의 경험으로 인해 <스탠바이, 액션!>은 DMZ IDFF 홈페이지에 게시된 영화 소개와 대표 스틸을 보자마자 빼놓을 수 없는 영화였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세월호 참사 시위를 오고가는 <스탠바이, 액션!>은 故 박종필 감독을 매개로 두 운동을 연결하면서 스크린 너머 관객과 연대하려는 시도를 한다. 장애인, 빈민,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운동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故 박종필 감독을 잘 알지는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영화인이자 운동가이다. 다만 그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세월호 참사 시위, 나아가 가장 최근의 이태원 참사 시위에 이르기까지, 그 이전 국가에 의해 지움을 강요당한 IMF 실직자, 노동 빈민 등을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스탠바이, 액션!>은 국가에 의해 계속해서 지워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를 기록한 영화이다. 故 박종필 감독의 의지를 계승한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이끄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운동가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아버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문종택 감독이 계속해서 국가의 지움에 저항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 장르라는 점만이 아니라 <스탠바이, 액션!>은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을 하나의 영상으로 엮은 영화라는 점만 고려해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술로서 혹은 오락으로서 영화는 아니며 대단히 정치적인 영화이다. 어떤 누군가는 그러한 정치성을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약자로서 지위를 이용한 멜로드라마라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멜로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세월호 참사 시위를 비롯해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과 연대에 대해서 한국 사회가 그들의 삶을 멜로드라마로서 받아들이며 반응한 적은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자식의 죽음을 이용하는 부모, 출근과 통학을 방해하는 강자로 인식하고 그들이 당하는 정치적, 사회적 혐오에 편승해 조롱·멸시하지 않았는가. 다르게 말하면 <스탠바이, 액션!>은 멜로드라마로서 관객에게 감정적 공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이기에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자신들의 울분을 담아 얘기한다는 점에서는 멜로드라마처럼 보일지 모르나 오히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이성적 공감을 바라고 있다. 오랫동안 짓눌려온 자신들의 삶을 증거로 국가에 의한 지움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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