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May 13. 2024

돈 천만원쓰고 왕따된 썰

[D+15]어학원, 사서하는 고생길 시작

원래 쉬지를 못하는 성격이긴 해

어학원 첫 날, 아니 실제로는 둘쨋 날. 아무튼 첫 수업의 시작 시간이 무려 오전 8시30분이었다.

업타운에서 다운타운에 위치한 학원까지 1시간여를 가야하는 길이라니.

잠깐이라도 편하게 살려고왔는데 왜 한국 직장 생활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지?


사실 처음엔 어학원에 다닐 생각이 없었다.

대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일단 가장 큰 욕망은 마케터로서 내가 배운 것들을 이곳에서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공부하는 것.

그리고 선진국의 마케팅은 뭐가 좀 다른지 연구해보는 것.

영어로 마케팅칼럼을 써서 캐나다 사이트에 노출해보는 것.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로 컨텐츠를 만들어 보는 것.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어보는 것.

그 친구들과 함께 컨텐츠를 찍어보는 것.(그리고 컨텐츠 중 하나로 꼭 윷놀이를 해보고싶었다!)


내 성격상, 계획없이 떠나도 결국은 뭔가를 하고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으나, 일 벌리는 걸 좋아하는 나라도 허리디스크가 터진 직 후에 일부터 할 수는 없으니까.


https://brunch.co.kr/@ziaewithaz/47


돈 천만원 털어쓰고 자발적 왕따되기

갑자기 바뀐 계획으로 인해 캐나다에 적응할 때까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여 어학원에 다녀보기로 했다.

말하자면 그룹투어의 느낌을 학원을 찾기 시작한 것인데, 또 한 편으로는 내 퇴직금을 털어 가는 워홀에서 몇 백짜리 학원을 아무 곳이나 다닐 수 있나. 유학원과 현지 어학원에 동시에 컨택해서 프로모션부터 방과후 액티비티, 서비스까지 비교하는 지난하고 오랜 기간을 거친 후에야 학원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 학원의 '뽕'을 뽑으려면 당연하게도 영어에 많이 노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수순으로 그러려면 또, 한국인 친구들을 만드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캐나다까지 오는데에 돈을 탈탈 털어쓰고 자발적 왕따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학교라는 곳을 졸업한지가 약 5년 전.

다른 말로 하면 사회생활을 5년했다는 뜻.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뭐 별 것 있겠냐 싶었다.

학생으로 돌아가서 돈내면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되는데,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친구 만들기라고해서 크게 다를까? 나는 회사 동료들과도 같이 놀러다니던 사람이라 이거야.

그러나 나는 어학원이라는 환경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오만과 편견

어학원 첫날은 실제 수업이 아니라 워크숍이었다. 학생들이 줌을 통해 학원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리고 학원에 실제로 등원하여 학원 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날.

성실(하고싶은)한 학생인 나는 당연히 워크숍에 참석하겠다고 밝히고 학원으로 향했다.

워크숍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한 세션에 동시에 입학하는 학생들. 그러니까 같은 반이 되든 안되든 간에 얼굴을 계속 봐야하는 친구들이라는 뜻이다. 학교에 오기 전부터 예상하긴 했는데 어학원에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체감상 많으면 1/3정도?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말을 틀 기회가 생기니 사람들은 빠르게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 중에서도 동향 사람들, 그러니까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은 그 네들의 언어로 좀 더 빠르게 친해졌다.

그 거대한 미팅같은 연락처 교환의 장에서 한 발 떨어져 상황을 관조하며, 겨우 얻은 몇 개의-내 입장에서는 외국인인 이들의- 연락처를 쥐고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비율로 보자면 한국인이 많은 편이지만, 다행인 것은 학원에 소속된 학생 수 자체가 많으니 굳이 한국인들과 친해지지 않아도 친구만들기는 어렵지 않겠다-는.


약간 아쉬웠던 점은 전체적인 연령대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어렸다는 점. 워크샵에 참석한 학생들의 수가 서른명이 되어보였지만 그 중에서 20대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는 손에 꼽는 수준.

동향에서 온 학생들은 그나마 대학생은 되었는데 캐나다와 가깝고 정부가 직접 지원 프로그램을 짜준다는 라틴 학생들은 10대인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건지 대체로 다들 활발하고 쾌활해서, 한 두 시간 안에 끝났어야 했을 워크숍 행사는 원생들의 핑퐁덕에 4시간이 넘도록 대화가 이어졌다.

SNS 계정도 몇 개 얻었겠다, 하루 종일 영어로 대화했겠다. 마지막까지 놀러간다는 그 중에서도 활발한 인원을 뒤로하고 학원을 떠나면서, 나는 뿌듯함에 젖어있었다.

이 피로는 오늘을 열심히 산 대가일 것이라고.



학생 신분을 만만히 본 죄

그러니까 내 학생시절의 기억이 얼마나 미화되었던 것인지 착각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일단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후 첫번째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내가 체력도 활력도 없는, 그런데 사람과 어울릴 때는 에너지를 소비해야하는 내향적 인간이라는 것.

거진 5년 동안 운동과 담을 쌓으며(조금의 변명을 더하자면 2주에 한번쯤은 자전거를 타러 다녔는데도!) 야근과 출퇴근에 지쳐있는, 내향인에 가까운 구 직장인은 10,20대와 섞여서 약 6시간을 떠들고(공부하고)나면 약속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들과 친해지는 상황을 지양한다-는 섬세하지 못한 계획에 밀려 잊고 있었던 점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동향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것.

결국 나는, 이미 각자의 세계가 있는 어학원의 생태계 속에서 나와 비슷하게 '외국인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구체적으로는 '그 친구에게 외국인인 나와 1:1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함께 놀 수 있을만큼 프렌들리한' 사람을 찾아야했다는 뜻이다.

그 중에는 나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같은 나라 사람들과 친해져서 나의 언어만 사용하는 것은 지양하겠다- 라고 결심하는 것 같은.

그러나 친구를 만든다는 게 어디 나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느냐고.


내 결심의 결과는 약 한 달동안의 즐거운(정말로 즐거웠던) 솔로라이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 물론 그 건 이 뒷 이야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