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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22. 2020

직장인, 좋게 얘기해봐야 최고급 노예

-오늘의 조언

퇴근 시간도 훌쩍 넘겨 옆 부서 팀장이 달려왔다. 팀장급에서 임원에게 올린 결재 서류가 계속해서 수정 지시를 붙인 채 반려됐기 때문이다. 팀원들에게나 팀장이지, 그들도 임원 앞에서는 별 것 아니다. 세 개 부서에서 같이 작성한 서류였기 때문에 함께 검토하기 위해 뛰어온 것이다. 마지막 팀장까지 합류한 후, 코멘트로 붙은 반려 이유를 읽어가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숨을 쉬었다. 셋 중 제일 어린 팀장이 대표로 자판을 두드리며 한마디 했다.

 

“아니, 이거 초안에 제가 8호라고 썼는데 누가 자꾸 7호라고 고쳐요? 상무님 숫자에 민감하신데 이러면 어떻게 해요.”

“나 아니야. 나도 8호라고 올렸어. 여기 봐봐.”


옆 부서 팀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모니터를 짚어가며 말했다. 세 사람은 15센티쯤 몸을 더 숙여 모니터로 다가갔다. 잠시 후 나머지 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여기 봐. 이거 상무님이 7호라고 고쳐 놨네. 헷갈리셨나 본데 어쩌지?”


사무실 저 쪽에서, 나처럼 그들이 하는 말을 흘려듣고 있던 정년을 앞둔 선배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상무님이 7호라면 7호인 거야. 팀장들이 잘못했네.”



이미 17세기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의거하자면 회사에서 존재하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을 하긴 한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신에 ‘그분’은 어떤 것을 원하실까 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생각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나의 바로 위 ‘그분’의 의중을 헤아려 일을 했더라도, ‘그분의 그분’이 다른 말씀을 하시면 또 망하는 거다. 야근각이다.


채집 생활을 끝내고 농경 사회로 접어든 이래로 밥 먹고 사는 일은 내 맘대로 되지가 않는다. 허리가 휘게 농사를 지어도 땅 주인이든 왕이든 누군가가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세금 착취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산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나온다.


지금은 화전민도 불가능하다. 주인 없는 산은 국립공원뿐이다. 무단 침입으로 걸리든 국립공원 공단법에 걸리든 몸과 마음이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사람이 가진 것은 잘하면 졸업장뿐이고, 잘못되면 그것에 더해 학자금 대출 정도다. 자영업을 하려고 해도 일정한 자본이 필요하다. 공부하느라 대출까지 받은 마당에 사업을 위한 대출을 더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몇 년만 참자는 생각으로 취직을 한다.



출근해서 며칠만 지나면 알게 된다. 회사는 내 생각을 말하는 곳이 아니다. ‘그분’의 생각을 헤아려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적응을 못하는 직원들은 빠르게 물러난다(신입 직원 중 1년 안에 퇴사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요즘은 취직이 어렵다는데 그 비율은 줄지 않습니다). 남은 사람이 문제다. 필요한 자본을 모아 재빠르게 뛰쳐나가는 사람은 낫다. 한 달에 한번 통장에 들어오는 돈에 길들면 그만 두기가 쉽지 않다.


버티기 위해서는 ‘그분’처럼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은 가능하면 뇌의 보이지 않는 심연 아래로 밀어 놓아야 한다. 물론 ‘그분’처럼 생각한다고 ‘그분’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분’처럼 생각하다 보면 내가 정말 ‘그분’이라는 착각은 하게 된다. 내 생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분처럼 생각하는 자신만 남는다. 자신도 월급 받는 노동자면서 회장님 입장에서 노사업무를 보거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들이 그래서 생겨난다. 여기에는 약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윗사람이 되어서 ‘자기 생각’을 가진 직원을 봐 줄리가 없다. ‘그분’의 얼굴이 바뀌었을 뿐 ‘그분’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그래서 계속 존재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전 나치 친위대 지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본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진도가 훅훅 나가는 책은 아니다. 재판을 소재로 한 소설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문장은 담담하고, 번역본 특유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하는 문장도 넘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의무를 다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특별히 과도한 반유대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출세하고 싶은 동기를 지닌, 그래서 위에서 내려진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 업무 책임자로 500만 명을 홀로 코스트로 보내 고통받게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인간에게 내린 평가다.


승진도 좋고 출세도 좋다. 자영업이 직장보다 편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장단점을 따져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면 고민해 보는 것이 좋다. ‘그분’처럼 생각하는 습관을 기를 것인지, 그래도 ‘내 생각’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적군의 숫자가 압도적이고 무기도 다양하다면 전면전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 남은 것은 게릴라전뿐이다. ‘그분’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위장하고 ‘내 생각’을 끊임없이 갈고닦는 길도 있다. 행운을 빈다!


-오늘의 조언 : 전쟁사를 보면 게릴라전으로 이긴 전투가 있긴 있습니다. 비율은 많지 않습니다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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