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썸이 끝난 사람처럼 떠나가지.
처음엔 잘 몰랐다.
이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치 어제까지 집으로 잘 돌아갔고 다시 오늘 학교에 등교했는데 갑자기 모든 환경이 낯설어진 느낌. 나만 혼자 오늘 아침 전학 온 듯한 기분.
익숙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가 한순간에 내가 지금 뭘 놓친 건지 당황스러워지는 기분. 불현듯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기분.
두 가지 방법이 있겠다.
하나는. 이런 기분을 무시하고 적당히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됐는지 샅샅이 분석하고 찾아보려는 것.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원래 파고들기 좋아하는 성향인 데다 찜찜한 것은 싫었으니까.
이건 꼭. 그저 그런 공포영화의 흔한 장치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배경은 어두워지고 주변엔 아무도 없다.
수상한 음악이 깔리는 듯하고 내 눈앞에 커다란 문이 하나 있어 그것을 열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그런 순간.
- 열지 마. 바보야.
- 꼭 저러더라. 저러다가 당하더라고.
- 열어야 재밌지. 끝을 봐야지.
어디선가 팝콘 기름이 묻은 진득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조롱하는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연다. 나는 결국 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
삶은 썸이 끝난 사람처럼 떠나간다.
애틋하게 나를 챙겨주고 살짝살짝 나를 쳐다보던 그 눈길이 좋았다. 힘들어 울고 싶은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 작은 이벤트로 내 기분을 풀어주기도 한다.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내 기분을 알고 싶어 한다.
내가 더 예뻐지고 싶게 만들고 몸에 꼭 맞는 청바지를 입은 것처럼 나를 행복하게 한다. 노골적으로 난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짜릿하고 뿌듯했다.
언제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기꺼이 내 손을 잡아줄 것처럼 나를 향해 웃어준다.
너무 오래 도취되어있었던 걸까.
이건 너무 쉽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이제 우린 서로 고백만 하면 끝나는 거라고.
이슈가 터진다. 처음 겪어보는 문제들에 혼란스러워지고 어리고 어리숙한 내가 주변에 의지하게 되고 그때 마침내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문제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게 된다.
어리고 어리숙한 나는 흔들리고 지금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게 된다.
이제 서로 고백만 하면 끝나는 썸을 타던 우리는 어느덧 서로를 볼 수 없게 된다.
나의 용기 없음으로, 저쪽의 무언가에 의해 그렇게 이미 끝나버렸겠지.
삶과 썸은 닮아있다. 다 잘될 것처럼. 이제 고백만 하면 끝날 것처럼 나를 온통 흔들어놓고 흐지부지 멀어져 간다. 용기 내 꼭 붙잡아야 한다는 것만 알려주고 떠나간다.
그동안 우린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만 알려주고 떠나간다.
따져 물을 수도 없게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삶과 썸은.
오롯이 내 자책으로 남는다.
문을 열든 열지 않든. 영화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