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홈 스위트 홈 / 46 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비가 그친 어느 날에는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났다. 당시 다섯 살이던 내 손바닥보다 작고 깨끗해 보이던 연두색 생명체. 나는 손을 뻗었고 청개구리는 폴짝폴짝 뛰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울었다. 왜 울었을까? 그때 내가 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 잊어서 영영 모를 것이 되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나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상처받았다. 빈말을 하고 상대방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찍어 내리는 관계에 환멸이 났다.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고 이대로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지, 상처 주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왜 자꾸 공격적이게 되는지,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사랑해 줄 수는 없는 건지.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는 것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에, 나는 무한한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심히 감동하고 감복한다. 이 세상에 진심인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사랑을 믿고 그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사랑만이 이 세계를 지탱할 수 있다고.
나는 반가워서 말을 걸 거야. 네 영혼이 나타나면 너무 반가워서. 돌이켜 보면, 엄마는 그때 처음 받아들인 것 같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는 말로 밀어내던 높은 확률의 미래를.
그럴 일은 없어, 엄마.
그러나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 없거든. 내 몸이 죽으면 내 영혼도 죽는 거야. 그러니까 죽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고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나쁜 년.
엄마가 말했다.
이럴 때 보면 넌 진짜 지독하게 나쁜 년이야.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과거는 이미 지나가고 현재는 내가 겪고 있지만, 미래의 날이 다가오면 그 또한 현재가 된다는 시간의 간극을 좁혀 본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나의 경험들을 원동력 삼아 미래의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내가 매일을 노력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다. 좋은 글을 읽게 된 것 또한 나에 대한 친구의 사랑임을 떠올린다.
사랑은 좋은 거야, 그게 무엇이 됐든지 간에. 종종 사랑은 자해라는 비관적인 말을 하지만 사실 그것이 스스로를 위해(危害)한다 하더라도 올곧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며 받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의 말은 개의치 않기로 한다. 사랑은 언제라도 좋은 것이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와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본인의 마음을 가다듬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쳐 본다.
가짜 눈물은 짜지 않고 달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내 눈물은 그런 맛일 것이다. 매일 더 다정하자고 다짐했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