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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Apr 17. 2024

나만 듣는 혼잣말

김행숙, 1914 년


이 세상에서 오롯이 나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의 범주를 떠올려 본다. 물건도, 사람도, 모든 것을 차치하고 오직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만 내 것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의 정신 같은 것 말이다. <김행숙, 1914 년>을 읽으며 나는 내 정신에 대해서 조금 더 탐구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914년에 대한 정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비극적인 해이다. 이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던 벨 에포크 시대가 막을 내린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유럽사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을 지닌 단어이다. 보통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전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 경제, 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한 태평성대를 뜻한다. 출처 나무위키



무의식은 무한하고 나는 유한한데
이제 내 신발 밑에서는 한 개의 그림자도 새어 나오지 않아요.
무의식은 보이지 않고 나는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지킵니까?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을 어떻게 지킵니까?
나는 꿈을 꾸지 못하고 헛소리도 하지 못해요.
꿈을 꾸지 못해서 잠을 자지도 못해요.
얼마나 높은 곳에 오르면 무의식이 보입니까?
그곳에 누가 있어서 무의식을 씻기고 먹이고 새어머니 노릇까지 합니까?
무의식에 손대는 그 손은 얼마나 거대합니까?
오늘날 신적인 것은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냅니까?
무의식의 엄마가 나의 폭군이라면
무의식의 친지들이 내가 대문 앞에서 쫓아낸 이방인들이라면
무의식의 적이 나의 친구들이라면
그래도 나는 무의식을 몰라요.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나는 간첩을 몰라요.
제발 살려주세요. 눈이 내리는 1월에도, 눈이 녹는 1월에도, 나는 세금을 냈어요.
그날 눈 쌓인 새벽 골목길에 내 발자국이 푹푹 찍혀도
나는 정말 나를 몰라요.

/ 무의식을 지켜라


무의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개 프로이트의 이론을 우선 떠올리겠지만 조금 더 간단하고 가벼운 감상을 써 보기로 한다. 결국 무의식이라는 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데 나는 그것을 직면할 수가 없다.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인데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의 균열을 발견한다. 계속된 질문에도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무의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의식을 내가 밀어낸 것이라면, 혹은 이미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있다는 것만 알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말 나를 몰라요>



우리는 저녁 여섯 시에 약속을 하자.
풀잎마다 입술을 굳게 닫아걸었으니
풀잎은 녹은 열쇠처럼 지천에 버려져 있으니
그리운 얼굴들을 공중에 매달고
땅 밑에 가라앉은 풀들을 일으키자.
우리 혀를 염소의 고독한 뿔처럼 뾰족하게 만들고
서둘러, 서둘러서 키스를 하자.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찔리자, 찌르자.
입술이 뭉개져 다 없어지도록
저녁 여섯 시에 흐르는, 흐르는 피
젖은 내장을 꺼내어
검은 새 떼들을 저 하늘 가득하게 불러 모으자.
이제 우리는 뜨거운 어둠을 약속하자.

/해 질 녘 벌판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잠재의식이라는 것은 꿈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기인할 수 있다. 무의식이라는 것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이미 존재하며 기저에 깔려 있는 그것을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기 위해  시인은 글 쓰기를 선택한 것 같다. 그리하여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무 의미 없이 우는 아기의 모습으로 말이다. 아기의 울음은 음성이라 음운이 아니다. 의미 없는 소리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보는 사람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의 틈을 갈라버린다. 소리 그 자체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당신이 그 울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무의식을 이끌어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내 머릿속에 가득 찬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세요.



나는 쓴다. 아이의 죽음 때문에 넋이 나간 어머니처럼, 나는 나를 흔들어 재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당신은 나를 흔들어 깨우려고만 합니다
당신은 나를 흔들어 재울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보세요, 내가 나를 흔들어 얼마나 깊이 잠재울 수 있는지......
내가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깊이 저편에......

아기가 되겠습니다
우는 아기가 되겠습니다
당신이 달랠 수 없는 울음이 되겠습니다. 해일처럼
내 전부를 끌어모아 당신에게로 귀환하는 무의식이 되겠습니다.

/ 요람의 시간
4

또 어느 날은 네가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고 있지. 혼자 하는 말은 혼자 하는 생각과 얼마만큼 비슷한 걸까. 나는 말벗이 될 수 없구나. 대신 비밀이 되어줄게. 나는 아무도 모르게 커져서 먼 훗날 너를 품에 안고 고요하게 폭발할게.

/ 잠들지 않는 귀


아래의 에세이를 읽어 보자. <정신>이라는 제재에 집중하기 위해 오감을 자극한다.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리며 귀로 소리를 듣고 할 수 있다면 냄새나 피부로 느껴지는 촉각도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명상하는 느낌으로 글을 읽어 본다. 귓구멍으로 들어간 나의 정신이 나의 뇌, 그리고 뇌가 있는 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나무라는 것의 가지가 부러질 수 있을지언정 뿌리 깊은 나무는 절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그것이 무의식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일면인 것이다.



어쨌든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서 틀어박혔다. 그 아이는 내 귓속에 들어와 앉아 씨앗처럼 모든 것을 안으로 접고 있는 것 같다. 귀는 내 몸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귀는 내가 하는 혼잣말을 듣는 유일한 존재, 그것은 은밀하다. 내 눈은 잠든 나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귀는 언제나 열려 있다. 귀는 잠든 내가 지껄이는 기이한 잠꼬대를 태어나서 지금껏 묵묵히 들어왔고 (중략) 뇌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귀는 비밀처럼 봉인하고 있다. 귀는 한쌍의 작은 무덤이다. 정오의 그림자처럼 내 몸에 딱 붙어서 내 귓속의 그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혼자 듣고 홀로 들어가 눕는 관처럼 깊이 파묻었는지, 그 고독은 무엇인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중략) 나는 꿈속에서처럼 달리고 있다. 길은 하얗게 불타고 있다. 300미터 전방은 계속된다. 거대한 나무처럼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다시 왼쪽으로도 시간의 길은 무한히 자라난다. 그러나 내가 죽은 나뭇가지 위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거라면, 머지않아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나는 검은 나뭇가지 위에 가볍게 얹힌 눈송이처럼 툭, 떨어질 것이다. 겨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을 뿐이다. 시간의 숲은 무성하다. 시간의 숲은 활활 타오른다.

/ 시간의 미로 (에세이)


평화의 시대가 끝난 1914년 분열과 전쟁이라는 파괴와 고통의 시발점이 등장한다. 그것은 시대적인 측면과 더불어 정신세계로 연결하여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의식이 자꾸 무너지는데요,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자멸이고 굉장한 폭동의 시작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내가 숨기고 있었던 무의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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