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다,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어떤 것을 너무나 좋아하면 그것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이 시집이 그런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단순히 재미있었어요, 흥미로웠어요라는 말로 끝내기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적어 내려갔다. 할 수 있다면, 이라는 말을 빌어 두세 가지의 시를 엮어 글을 써 보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해 보았다. 오늘의 주제는 <우리 여기에서 춤추자>라는 제목으로 춤이라는 행위와 의미 그리고 춤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 부 이 구부러진 손가락에 작은 불씨를 주십시오
이 시에 나오는 춤은 굉장히 정열적이며 동시에 고요하고 화려하지만 적막한 느낌을 준다. 춤이라는 행위는 음악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행위 그 자체로 봐도 좋다.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행위의 장면이 실은 굉장한 의미였다는 것에 도달할 때, 마음에 꽂히는 모순과 역설을 사랑한다.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종소리가 들린다면. 온몸이 가려워서 견딜 수 없어. 무대가 막을 내리자 폭죽이 터진다면.
이 밤이 잠든 너의 얼굴을 잠시 밝힌다면.
꿈에서 얼마나 가려웠으면. 너는 꿈에서도 춤을 추며 발가락을 접었다 펴고. 피 흘리며 깨어나는 걸까.
첨탑이 무너지는 망상 속에서. 팔뚝에 꽃잎이 불게 만개하고 있어.
불 꺼진 간이역을 불붙지 않은 성냥처럼 누구도 지키지 않고. 이 밤의 마지막 열차가 도착하는데. 나의 손목은 멀쩡해
- 너의 춤을 이해한다고....... 말해 줄까?
/ 그러나 고요하고 거룩한
춤을 추는 배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겠다. 대개 이 시에서는 멋진 무대에 화려한 조명이 아닌 늦은 밤 가로등 또는 모닥불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것들을 떠올리기로 한다. 몽롱한 분위기에 휩쓸려 춤추는 존재들은 대개 위험하고 불안정해 보인다. 개중에서도 <무지개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소년 소녀들>이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해 보기로 한다.
<광장을 쏘다니며 노래하다가 / 찢어진 손등을 검은색 실로 꿰매주다가 / 뒷골목에서 무언가를 주워 먹다가 / 그런 우리가 우스워 눈을 마주치곤 웃어버리는 것 / 가끔 술을 얻어 마신다면 / 오늘 하루는 나쁘지 않은 하루>라는 것에 안도하고 <좋은 밤에 … 내장이 튀어나올 때까지 … 빈속에 피워대니까 … 춥고 어지럽다>는 감상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하며 진행된다.
어쩌면 춤추고 있는 그들의 삶이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림자를 빛의 연극이라고 여겼어. / 고대인들에게도 노래와 춤이 필요했겠지./ 절반의 밤 시야에서 / 사람들 표정과 빛이 섞이자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 안개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도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불안정한 상황과 배경이 주는 불안함과 불편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고, 몽롱한 상태는 마치 취한 느낌이 들기에 거리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나 또한 취해 버린다면, 그들과 동화되어 버린다면 어떨까. 다시 말해, 그들은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춤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평가와 감상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춤이 주는 자유로움이고 동시에 춤추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폐쇄된 호수에 앉아 발을 적시다가 / 아무도 돌 던지지 않는 거리에서 노래하다가 / 들판에 떨어진 과일로 허기를 채우다가 / 불을 피워놓고 노는 곳. / 가끔 술도 얻어 마신다면 / 우리 도착지는 나쁘지 않은 곳. / 분명 그런 곳일 텐데. /그 아이는 불의 그림자를 춤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어>
정해져 있지 않은 단정하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것이 환기하는 몽환적인 배경에 취해 가는, 또는 취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 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텍스트는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 들어가야 함을 다시금 깨닫고 서슴없이 그 춤에 참여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갸륵한 화자의 양가감정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다. 춤을 추지 못하는 상황에 반발하며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춤을 추고 싶지 않은, 하지만 춤을 추는 상태야 말로 본연의 모습을 표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화자라는 나의 실체는 음험하고 가난하고 불쌍하고 굶주리기라는 불건강한 것에 중독된 상태로 드러난다. <지금 우린 그곳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그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언제까지나 굶주리고 싶었다. - 잔디와 청보리의 세계> 다만 그들은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를 위해 누굴 죽일 필요 없어.
나는 너의 흰 손이 무사했으면 좋겠어.
…
사랑도 모르면서 사랑 노래를 부른다니요. 교육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랑을 경험했는지 늘어놓는다.
이제 정말 집에 갈 시간이야.
나와 친구들은
다락방으로 숨어들어
몸을 섞으며
이름 없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 겨울은 계속 나쁜 짓을
나는 그 리듬을 목격했습니다.
알아요. 우리는 현대 시대를 위한
종교재판중이지요.
복부에 인류애를 담아두세요.
용기를 주세요. 감히 제가 누굴 죽일 수
있겠어요?
저에게서 자비를 가져가시고 모든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이 구부버린 손가락에 작은 불씨를 주십시오.
캐치볼입니다. 내가 울면
어디까지 들려요? 부러진 악기처럼.
매일 밤 슬픈 얼굴로요.
칼로 도려 낼게.
죽어.
죽어.
시끄러워. 곧 끝날 거야.
이제 죽으라니까.
축하해.
/ 방아쇠와 이어달리기
고단한 춤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춤을 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관객으로서의 역할에서 그치는 것을 뛰어넘어 그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춤이라는 보편적인 행위가 자아내는 분위기와 환상에 대해서 계속 논하기로 한다. 그것 자체가 되어 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객관적이면서 주체인 동시에 주관적인 타자 또한 될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