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딸기잼이 있던 찬장
발끝을 힘껏 들고 높은 곳을 더듬어 충분히 붉은 것들을 맛보았어. 입가를 온통 물들인 채 한 쌍의 유두가 된 기분으로.
언니, 우린 분명 교묘히 어긋난 한 사람일 거야. 딸기의 어수선한 초록 왕관을 쓰고 이불속에서 첫 몽정을 말하던 아침. 땀구멍마다 질긴 씨를 하나씩 슬어놓으며 우리는 함부로 은밀해지고 조금씩 말랑해졌지. 반투명 젤리 속 일렁이는 둘만의 왕국에서.
나에게 여분의 계절이 있다면, 부리가 사라지려는 새처럼 서둘러 속된 말들을 속삭이고 썩기 직전의 가장 달콤한 노래를 언니에게 선물했을 텐데. 분홍만으로 이루어진 무지개를 뭉개고 죄의식의 묘한 기쁨으로 아침의 올빼미를 불러올 텐데.
손가락 사이로 달고 끈적한 것들이 흘러내릴 때, 감춰야 할 것이 늘어버린 마음으로. 한 개의 입술이 더 있었다면, 한 쌍의 얇은 점막이 더 있었다면, 뒤섞이며 짙어지는 맛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그저 길게 두 팔을 벌리고 옛 붉음을 겪었지. 우리가 아직 숨겨진 단 것을 사랑하던 그때.
/ 딸기잼이 있던 찬장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를 고르라면 나는 단연, 기어코 이 시를 고를 것이다. 왜냐는 이유를 묻는다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랑의 단상, 시의 화자는 ‘발끝을 [힘껏] 들고’ 찬장에 있는 언니와 찬장에 있던 딸기잼을 먹던 기억을 떠올린다. 딸기잼의 표상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는 높고, 붉고, 맛보기까지 하여 가까이하고 싶은 연인들의 또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지향점일 것이다.
초기의 사랑이란 대부분 그럴 것이다. 화자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을 때 치기 어리다는 말도 어울릴 수 있으나 열정이라는 촌스러운 단어도 용인되는 사랑이 있는 법이니까.
말랑하고 달콤한 찬장의 딸기잼을 몰래 먹는 일은 죄의식을 남긴다. 잘못된 일인 줄을 알면서도 딸기잼의 달콤함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하지만 비밀은 혼자가 아닌 공유하는 사람이 있으므로서 더 첨예해진다.
시에서는 그런 딸기잼이라는 달콤한 사랑을 얻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것을 성취했을 때의 쾌감을 ‘그때’로 갈무리한다. 딸기잼을 얻고 달콤함을 맛보는 일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로 회고하는 이야기에는 결국 나만 남는다.
단순히 사랑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이야기보다 자매로서의 동질감일 수도 있겠고, 그때 무모하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공유했다는 경험과 이를 공유하는 단 한 사람과의 기억의 시작과 끝,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전반적인 면모일 것이다.
결국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이었다는 깨달음의 복기. 사랑과 비밀은 언제라도 조심스러운 삶의 동반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