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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유독 길게 온다던 장마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옥불에 떨어진 것 마냥 땡볕 더위만이 내리쬐는 요즘입니다. 인간들이 만든 지옥에 갇힌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더위 속에 있으니 기나긴 장마가 걱정되던 것도 잠시, 이젠 그냥 비가 좀 왔으면 하는 지경입니다.
분리수거하래서 했고 텀블러 쓰래서 썼고 에어컨 적정온도 맞추래서 맞췄고 종이빨대 쓰래서 썼는데 이젠 뭘 어떻게 더 해야 할지 감도 안 옵니다. 개인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니까 허탈할 뿐이에요.
날씨 앱을 열어보면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숫자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비 표시는 찾아볼 수도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음 마크만 끝없이 이어져 있어요. 맑다는 게 이렇게 절망적일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맑은 날씨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구름이 보이기만 해도 반갑고 바람이 불기만 해도 고마워요.
그래서 요즘 비 소식에 더 민감해집니다. “어디 어디에 소나기” 뉴스가 뜨면 괜히 부러워지고, 다른 지역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 우리 동네는 안 오냐고 투정 부리게 되죠.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정작 몇 방울 떨어지고 마는 걸 보면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인간은 간사합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날씨 속에서 어린 시절 장마철이 그리워집니다. 그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짜증 났는데 말이에요. 학교 가는 길이 질척해지고, 빨래가 안 마르고, 습하고 끈적해서 싫어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게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아스팔트는 오늘도 아지랑이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더위를 가중시키고, 도심 곳곳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어요.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냥 지금은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시원하니까요. 빗소리를 들으면서 창 밖을 바라보고 싶거든요. 빗물이 아스팔트 위로 후드득 떨어지면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도 맡고 싶고, 우산 쓰고 걷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아요.
비 온다면서요. 정말 언제 올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