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아르바이트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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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저는 대학생이 된 이후로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제 일상은 늘 아르바이트와 함께였고, 생계형 아르바이트 덕분에 제법 다양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주꾸미삼겹살집에서 설거지부터 설렁탕집, 중국집 등 식당 서빙은 당연하고, 전단지도 돌리고, 편의점은 물론 프랜차이즈 커피숍, 개인 커피숍을 거쳐 주스가게, 마트 진열, 액세서리숍, 대형 옷가게, 여성복 전문 옷가게, 남성복 전문 옷가게도 종류별로 섭렵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주꾸미삼겹살집에서의 설거지는 제게 노동의 참맛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설거지와 서빙 중 설거지를 택한 저는 끝없이 쌓이는 그릇들과 씨름하며 제 선택을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다 젖어버린 티셔츠와 거칠어진 손, 아픈 다리를 보며 '성격이 대수랴. 이런 성격 고치면 그만이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빙은 또 다른 도전이었죠. 뜨거운 그릇을 능숙하게 나르고, 손님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빠르게 파악해야 했습니다. 불친절한 손님들의 핀잔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비스업의 기본기와 인내심을 배웠습니다. 그 경험으로 커피숍에서 손님을 대하는 일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개인 커피숍까지 커피 향이 배어있는 공간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 향처럼 몸에 배었고, 커피를 내리는 기술이라면 기술도 배웠죠.


전단지를 돌리는 일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무관심한 사람들 사이에서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미소를 잃지 않아야 했죠. 그 후로 저는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다 받느라 가방이 가득 차고는 합니다. 편의점에서는 새벽 시간대의 고요함과 왁자지껄한 초등학생들, 날이 어두워지면 찾아오는 취객들까지 고루 겪었고, 주스가게는 제가 일하다 중간에 망해버려서 한동안 급여를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액세서리숍에서는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했죠. 대형 옷가게의 바쁜 분위기에서부터 여성복 전문점의 세심한 서비스, 남성복 전문점의 전문성까지. 각각의 공간에는 고유한 문화와 규칙이 있었고, 저는 그 모든 것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경험은 자산이라고 했던가요. 각각의 아르바이트는 저에게 다른 능력을 길러주었으니 이 모든 경험이 단순히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자소서에 제 화려한 아르바이트 이력들을 휘갈기고는 했으니까요. 30대가 되어 그동안의 아르바이트 경험들을 정리해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 모든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더라고요. 사회에 나가기 전에 미리 맛본 현실의 쓴맛과 단맛,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낸 저만의 생존법들. 아르바이트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인생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모든 경험들이 저를 더 현실적이고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버티고, 또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야말로 제가 그 시절 아르바이트에서 얻은 가장 값진 보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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