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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11. 2020

#02 “도끼와 전기톱의 차이라고 난리던데?”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02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02


어제의 만남 이후 줄곧 희수를 생각했다. 점심으로 먹을 냉동만두를 넣은 찜통의 유리 뚜껑이 점점 뿌옇게 변하다가 이내 작은 숨구멍으로 수증기가 빽빽하게 비어져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계속 희수를 생각했다.


“오빠, 그게 가능할까? 부부가 그렇게 오랫동안 섹스를 안 한다는 게? 그런 상황이면 일단 너무 불편할 것 같지? 서로 되게 어색할 거 아니야.”


“글쎄, 어떨지 나야 짐작도 안 되지. 근데 내 친구들 보면 집에서는 딱 필요한 말만 한대. 애들 얘기나 부모님에 관한 그런 말들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내 친구 중에 와이프하고 정기적으로 섹스한다고 말한 애는 딱 한 명뿐이야. 그러니 섹스리스가 그리 드물지는 않을 거야.”


만두를 절반쯤 먹고 있을 때 희수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나 언니가 어제 말했던 섹스토이를 샀어. 방금 도착했거든?”


어라? 어제 만났을 때 ‘너네는 여태 그런 것도 하나 없었단 말이야?’하고 잠깐 언급했던 걸 벌써 수중에 넣었다고?


“집에 오자마자 검색해서 바로 주문했거든. 언니가 말했던 두 가지를 다 샀어. 나도 이제 바이브레이터가 있다? 크흐흐흐.”


하도 오르가슴 타령을 하길래 혼자 즐길 수 있는 도구에 대해 알려주었을 뿐인데, 희수는 그걸 벌써 손에 넣고 기대에 차 있었다.


“19금 소설 읽으면서 뭔 소리인지도 모르는 게 얼마나 슬픈지 알아? 이 나이에 그거 하나 이해를 못 해서 궁금해하는 심정을 언니가 아냐구!”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희수가 이렇게 쏘아붙였다. 


“버럭 하긴? 난들 다 알겠니? 내가 섹스의 화신도 아니고. 그래서 사용해 봤어?”


“아직. 지금 충전 중이야. 받자마자 언니한테 말하는 거지. 근데 나 너무 기대돼. 후기 보니까 장난 아니겠더라. 언니도 자주 쓰지?”


“아니, 난 혼자 있을 때도 거의 없잖아. 바이브레이터는 섹스할 때 아주 가끔 이용해. 너 너무 기대하진 마.”


내가 권하긴 했지만, 희수가 저리 들떠있으니 막상 기대에 못 미칠까 걱정되었다. 


“후기 보니까 다들 남자 필요 없대. 무조건 남자보다 낫다는 거야. 도끼와 전기톱의 차이라고 난리던데?”


“근데 그걸로는 너무 금방 끝나버려서 약간 허무한 그런 게 있어. 기계만으로는 충족이 안 되는 부분이 있잖아. 섹스할 때 옵션으로 쓰면 좋아. 근데 남자 없는 여자는 괜찮을 거 같아. 깔끔하잖아.”


“아이, 나 무지하게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 근데 언니한테 말하기 직전에 친한 동생한테 전화가 왔길래 이런 거 샀다고 얘기했거든. 그랬더니 자기도 있다는 거야. 세상에! 나 말고 모두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거였어. 근데 그 동생 말은 언니랑 달라. 이걸 사용하다 보면 인간한테 실망할 거라나? 자기는 기계만 만족스럽대.”


“그래도 인간을 대체하기엔 부족해. 아니, 달라. 인간이 없을 때 욕구를 잠시 채워주는 정도라고. 아니면 섹스할 때 인간의 노동을 줄여주는 보조역할?”


“와, 언니만 지금 다르게 얘기하는 거 알아?”


내 말 한마디에 희수가 이것들을 덥석 살 줄이야! 어? 그런데 남편한테 들키면 어쩌지? 갑작스레 그 생각에 미치자 나는 이 일로 무슨 사달이 날까 싶어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이런 것들을 샀노라 고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몇 년간 섹스하지도 않았다는 남편에게 자위기구 샀다는 말을 한다고? 아니면 들킨다? 어느 쪽이건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희수야. 그거 남편 몰래 감춰둘 거지?”


“당연하지. 섹스도 안 하는데 이런 걸 샀다고 어떻게 말해?”


희수는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 


“야, 그냥 남편한테 확 말해버려라. 그리고 오늘 밤 섹스파티를 하는 거지. 그동안 못했던 한을 풀어버리는 거야.”


전송을 누르면서도 이거야말로 19금 소설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싶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 내가 말하면 오빠가 ‘사실은 나도 이런 게 있어.’ 그러면서 침대 밑에서 온갖 기구들을 주섬주섬 꺼내는 거 아니야? 그러면 무지 웃기겠는데? 정말 말해 볼까?”


그러면서 희수는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이모티콘을 이어서 보냈다. 이모티콘 뒤로 희수의 웃는 반달눈이 보이는 듯했다. 턱도 없는 소리 말라고 펄쩍 뛸 줄 알았는데 웬걸? 순간 희미한 기대감이 생겨서 더 몰아붙여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봐라? 네 남편이 우연히 그걸 발견한다고 해 봐. 그러면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겠어? 이왕 말 나온 김에 ‘나 오빠랑 다시 섹스하려고 이런 것도 샀어.’ 이래 보면 어때? 민망하면 나를 팔아. ‘윤주 언니가 하도 사라고사라고 권해서 사긴 했는데, 사용법을 잘 모르겠어. 오빠는 혹시 알아?’ 그래, 이거 좋다.”


“큭, 그게 뭐야. 언니 너무 기승전 섹스야. 내가 일단 써보고 후기를 알려줄게. 나도 남자 필요 없어질지도 몰라.”


“너무 기대하진 마. 난 분명히 말했다.”


“알겠어. 너무 기대 안 할 테니까 걱정 마. 나 정말 오르가슴이 뭔지 꼭 알고 싶은 거야.”


“근데 희수야. 언제고 남편이 그거 발견해서 너 혼자 여태 이런 거 사용하고 있던 거냐고 노발대발하면 어떡하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쩌면 이게 기회일 수도 있잖아. 말해 보는 거 딱 한 번만 생각해봐. 남편이 거부하지 않을 거야.”


나는 끝내 한 번 더 권했다. 기대 없는 바람이었지만 세상일 혹시 모르니까. 


사실 나는 희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희수도 결혼한 이후로는 남편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희수 남편의 생김새와 직업이나 알지, 성격은 희수에게 들은 몇 가지 이야기들로 아주 조금 짐작만 할 뿐이다. 


나는 그저 희수가 남편에게 저것을 들켜서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 걱정되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희수가 요령껏 내 핑계를 대야 할 텐데……. 애초에 괜히 섹스토이 얘기를 꺼냈나.


하지만 곧 희수가 어련히 알아서 잘 감추련만, 괜히 남편이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섣불리 했다 싶어서 이번에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라면 과연 몇 년 만에 섹스 얘기를 꺼내는 남편을 기다렸다는 듯 두 팔 벌려 안아줄 수 있겠나. 어휴, 생각할수록 내가 쓸데없는 말을 꺼낸 거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도 모르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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