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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un 08. 2020

#7. 가족이 맞습니까?

[르포 소설] 가족

 “하성재가 자료 열람을 승낙했던 걸 후회하고 있더군요.”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서 며칠 후, 이 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검찰로부터 출석 명령을 받은 하성재는 대범하게도 이 형사에게 직접 전화했다. 이 형사는 죄명이 무엇인지 민정에게 물었다. 민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주란의 아버지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아니, 아. 위임장 써준 지가 언제 적인데 아직도 생활비가 안 오는 겨? 으이?”

 술에 완전히 취한 목소리였다. 민정은 이제 막 고소장을 접수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다리면 돈을 받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날은 공소시효를 3주 앞둔 날이었다. 오전 9시, 마치 알람이 울리듯 전화벨이 울렸고 받아보니 낯익은 목소리였다. 하성재의 목소리였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주란이 사망하고 나서 두 달 동안, 민정이 수백 번 연락했지만, 늘 침묵해 왔던 성재였다. 그의 목소리는 재고소를 당한 피의자답지 않게 매우 차분했다. 그동안 밀렸던 생활비를 일시금으로 장인에게 바로 보내고, 다음 달부터 매달 생활비도 보내주겠단다. 그는 10년 전에 이미 다 조사를 받아서 기소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재고소해도 소용없다고 했다.

“당신이 뭔데 고소를 합니까? 가족이라도 됩니까?”

 화를 내야 할 건 민정인데, 오히려 하성재가 화를 내고 있었다.

 5년 전 폭행죄 공소시효가 만료됐을 때, 성재의 표정이 어땠는지 민정의 눈앞에 그려졌다. 민정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가족이 맞습니까?”

 민정은 전화를 끊었다. 아니 하성재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당신은 가족이었냐, 물었을 때, 성재의 전화연결이 끊어지는 기계음이 들렸으니까.

 아직 성재에게 따지고 싶은 게 많은데, 민정은 씁쓸했다.      


 “김민정 씨죠, 참고인 조사를 위해 좀 와주셨으면 하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가 말했다. 원주 검찰청이었다.

 민정의 가슴속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이 콩나물처럼 훌쩍 자라나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인 조사에서 혹시라도 실수를 하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민정은 서울에서 원주로 가는 첫 버스를 예약한 후 자신이 제출했던 서류의 사본을 가방에 넣고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주란이 사망한 지 거의 10년, 마침내 민정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청 조사실에 앉았다.

 “판사 앞에서 피의자의 웃옷을 쥐어 잡으며 싸울 수 있는, 그런 확실한 새 증거는 없습니까?”

 민정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하기 싫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런 말이 민정의 목구멍에 걸렸다. 우선 그걸 삼키자 마음먹었다.

 “저,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여 검사가 민정의 뒤쪽을 향해 눈짓을 했다. 조사실 안에는 여 검사와 민정 말고도 두 명의 다른 직원이 더 있었다. 그들 중 젊은 남자 직원이 종이컵에 물을 담아 민정에게 줬다. 민정은 컵을 받아 물을 마셨다. 그런데 좀처럼 목에 걸린 격한 감정들이 내려가지 않았다. 민정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피의자 조사는 마친 건가요?”

 여 검사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쳐졌다. 인내심을 잃은 여 검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공소시효가 3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이제 와서 고인의 아버지가 형사고발 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구급대원 통화내역을 드렸는데요. 또 14층에서 뛰어내린 사람에게 왜 두개골 골절이 없는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요. 제 친구가 어떻게 해서 죽게 됐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속상한 표정으로 민정이 여 검사에게 사정했다.

 검사는 두개골 골절이 없는 게 매달려 있다가 추락한 증거라고 말해 줄 국과수 직원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만약 사마리아가 실명으로 법정에서 증언만 해준다면, 공소시효가 하루밖에 안 남았다고 해도 피의자를 반드시 기소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날 하성재를 불러 심문했을 때 그가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피의자가 고인의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는군요. 다시 생활비를 보내주기로 했답니다. 아버지는 고소를 취하하고 싶다는데, 혹시 확인해 봤습니까?”

 혼미해진 정신을 붙들고 민정은 가까스로 검찰청을 빠져나왔다. 피의자가 주장하기를 고인의 아버지가 재고소를 한 것은 다 돈 때문이라는군요, 여 검사의 마지막 말이 민정의 귓속에서 윙윙 맴돌고 있었다. (끝)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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