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잖아! 되잖아!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전거를 타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삼십여 년의 시간 동안 몇 번의 배우려는 시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자전거는 왠지 탈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못 탄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몇몇 불편함을 초래하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반에서 자전거를 타러 갔을 때도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당당하게 네 발 자전거를 탔다. 커서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했을 때 자전거를 타야 하는 경우가 있으면 나는 2인용 자전거 뒷좌석에 끼어 탔고, 혼자 여행 가서도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이렇게 살려고 했는데, 3월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지금까지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자전거 타기였다. 봄이라고 다들 나와서 자전거를 타는데 ‘나라고 못 탈게 뭐람’이라며 마음을 먹었지만 한 달 동안 모른 척했었다. 그런데 에세이 드라이브 주제로까지 ‘자전거’가 등장하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 나이에 누구에게 잡아 달라고 하면서까지 자전거를 배우기도 뭐해서 요즘 애들처럼 유튜브에 ‘자전거 타는 법’이라고 검색했다. 검색하자마자 나오는 첫 번째 동영상의 제목에 끌려서 클릭해 보았다. ‘절대 넘어질 일 없는, 자전거 타는 방법 | 4세부터 80세까지 자전거 혼자 배우기’. 동영상에서는 다리만 보이는 아저씨가 웬 논두렁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줬다. ‘이게 될까’ 싶을 정도의 튜토리얼이었는데, 댓글에 이 동영상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동영상의 가르침을 숙지하고 토요일에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근처에서 따릉이를 한 대 빌리고, 공원 내에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아스팔트 길이 있어서 거기서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자전거에 올라 타 동영상에서 알려주는 3단계를 그대로 따라 했다. 앞에 두 단계는 수월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한 발은 페달에 놓고 한 발은 바닥을 딛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남은 한 발을 페달에 올려놓고 밟아보는 것이 잘 안 돼서 그 단계만 계속 반복했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도와주겠다며 같이 따라온 동생이 그만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싶었지만, 자전거를 두 시간이나 빌렸으니 조금만 더 타보자며 한 발을 계속 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좀 지쳤기도 하고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지자, 없던 용기를 내서 불안정하긴 해도 다른 발도 페달에 올리고 페달을 힘껏 밟아봤다.
‘오?’ 뭔가 되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한 번 더 페달을 밟았다.
‘오오?’ 자연스럽게 바퀴가 굴러갔다. 자연스럽게 페달을 밟아 나갔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타잖아!”라고 외쳤다. 이번만 된 것인가 싶어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타보았다. “되잖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자전거를 타니 40분 전까지는 느껴지지도 않던 봄바람이 불어왔다. 이런 바람이 자전거를 타면 느껴지는 바람이구나 싶었다. 서른 해 동안 뭐가 겁나서 못 탔는지 모를 자전거를 놀랍게도 40분 만에 탔다.
막상 타는 법을 알고 나니 별 것 아니었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웠을까. 상처 나는 것이 겁났을까.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나는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배웠을 것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좀 위축되어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자전거 타기 말고도 내게는 이렇게 미뤄둔 일들이 몇 가지가 있다. 정체불명의 두려움이나 걱정 때문에 선뜻할 수 없었던 일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자전거 타는 기분으로 해보면 될 것 같기도 한 일들이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배우기 힘들었던 자전거도 넘어져보니 상상하던 만큼 아프진 않았다. 다른 일들도 그렇지 않을까, 어쩌면 어릴 때보다 자라난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정도의 상처가 아닐까? 기대하면서 꿈꾸던 일들을 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