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굽히기가 어색해서...
“팔순 할머니들도 다 하는데? 다음에 올 때까지 연습해오세요.”
2021년이 거의 끝나가는 10월 중순, 나는 팔자에 없었던 ‘팔굽히기’ 연습을 하게 되었다. ‘팔굽혀펴기’도 아닌 이 ‘팔굽히기’ 연습은 그로부터 한 달 전 입은 부상에서 비롯됐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9월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재택근무를 이어나가며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내던 나는 앞으로 내 일상에 은근한 불편을 초래할 그 사고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샤워 후 물기가 남아있던 화장실에 겁 없이 슬리퍼도 신지 않고 들어갔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서서히 오른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낙법으로 바닥을 짚은 게 아니라서 갑작스러운 하중에 놀란 팔은 살짝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밤새 팔 전체를 냉찜질했고, 다음 날 팔꿈치가 골절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팔의 일부분이 부러졌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반깁스를 하라고 했고, 나는 탈부착이 가능한 깁스를 팔에 차고 다니게 되었다. 석고를 굳혀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찐깁스는 아니지만, 반깁스도 깁스다. 한동안 팔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얼른 붙어라 뼈야.” 기원하면서 뼈를 붙게 해 준다는 전설의 음식인 곰탕도 챙겨 먹고, 단백질, 칼슘도 많이 먹었다.
그렇게 5주 정도 팔을 움직이지 않고 반깁스를 하고 지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팔뼈를 움직이게 해주는 이음새와도 같은 팔꿈치를 5주 동안 고정하고 있으면,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 팔이 그 자세로 고정되는 것이다. 나는 5주 간 ‘ㄴ(니은)’자 자세를 유지하며 웬만하면 팔을 움직이지 않았고, 팔을 접거나 완전히 펴지도 않았다.
이제 곧 반깁스를 풀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병원에 갔더니 갑자기 내게 미션이 주어졌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께서 주치의였는데, ‘이제 그 팔도 슬슬 써야지’라고 하시더니 손이 어깨에 닿도록 팔을 접어 보라고 하셨다. 5주를 ‘니은자’로 살았으니 내가 팔을 접을 수 있는 각도는 90도가 최선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거밖에 안 되냐며 더 접어보라고 하셨고, 나는 80도까지는 시도한 것 같다. 나는 다음에 올 때는 손이 어깨에 닿을 수 있도록 연습해 오라는 미션을 받고 병원을 나섰다.
그날 이후 집에서 열심히 팔굽히기 연습을 했다. 다치기 전에는 자연스럽게 잘됐던 것도 한동안 안 했더니 갑자기 어려워졌다. 사용을 하지 않으니 굳어버려서 이제 막 쓰려고 하니 처음 팔을 움직이는 느낌으로 다시금 팔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오른팔을 다쳐서 한 동안 요리도 안 해 먹고, 가끔 쓰던 글도 안 쓰고, 운동도 안 했다. 움직이면 뼈가 잘 붙지 않을 것이라는 명목 하에 평소에 하던 일들을 아예 모른 척했다.
2주 정도 자체 재활 운동을 하고, 연습 성과를 검사받았다. 연습 덕인지 조금씩 팔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고, 45도 정도 접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반깁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어느 정도 재활 운동도 했고, 깁스까지 풀었으나 막상 두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옆으로 치워뒀던 일들을 다시 하려고 하니 어색했다. 꽤 친하게 지냈던 일상들임에도 거리감이 느껴졌다. 일상도 회복 운동이 필요했다.
다시 칼을 들고 재료를 썰어 보고, 글씨도 써보고, 스트레칭도 조금씩 하면서 거리를 좁혀 나갔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져서 다치기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지만 가끔 다친 부분이 저려 올 때마다 생각한다. 어떤 일들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새로 시작하는 것만큼 힘들다는 것을. 좋아하는 일들과 어색해지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친분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