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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텐텐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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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Oct 15. 2023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일상 - 발견 - 의심 - 대화 - 탈출 - 해방


 서울 모처에 있는 나비정원. 윤정 씨는 이 나비정원의 자원봉사자다. 특별히 할 일은 많지 않지만, 정원 안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챙겨주기도 하고, 나비를 마음대로 납치해 가거나,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매일 세 시간씩 하는 이 자원봉사는 윤정 씨에게는 힐링 프로그램이었다. 원 없이 나비를 보아도 되고, 팔랑팔랑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평화로운 자원봉사 시간에 어느 날부터인가 한 남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밀짚모자에 멜빵바지. 전형적인 곤충채집가 같은 모습의 그는 윤정 씨가 일하는 시간에만 와서 나비들을 둘러보았다. 항상 그렇게 입고 오는 것이 특이하기도 하고 그가 항상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면서 걸어 다녔기에 윤정 씨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를 주시했다. 

 그녀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몇 달 전 나비 정원에서 길을 잃은 할머니를 돌봐드리고 있을 때였다. 그 밀짚모자 남자가 또 그녀의 눈앞을 지나갔다. 윤정은 할머니를 출구까지 모셔다 드리고 다시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꼭 나비 한 마리를 훔쳐갈 것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가 그의 뒤를 밟아 간 곳에서 발견한 것은 나비와 대화를 하고 있는 그 남자였다. 검지 손가락 손 끝에 살포시 앉아 있는 그 나비는 정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비이지만 가장 볼 수 없는 나비이기도 했다. 검은색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고 날개는 푸른빛이 감돌아 화려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슬퍼 보이기도 하는 나비로, 이름은 '디디우스모르포나비'였다. 윤정 씨는 그 나비를 남몰래 디디라고 부르며 가끔 마주치면 반가워하기도 했다. 

 디디는 남자의 손가락 끝에 살포시 앉아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걸자 나비도 몸을 살짝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경악할 장면이었다. 윤정 씨는 살며시 남자의 뒤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고, 디디는 벌써 저 멀리 날아갔다. 남자는 잠깐 꿈이라도 꿨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순식간에 시무룩한 울상을 지었다. 

 

 "무슨 일이시죠?"

 "자주 오시는 분이시죠?"

 "그럼 안 되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바빠서."


 남자가 윤정 씨를 스쳐 지나갔다. 디디를 찾으러 가는 것일까? 윤정 씨는 생각해 보면 그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행동들이 어떤 사건의 전조증상쯤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입구 앞의 자원봉사 테이블로 돌아온 윤정 씨는 한 소년에게 실선으로 그려진 나비를 색칠할 수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윤정 씨는 그날 밤 디디가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윤정 씨는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며 관리자인 김형석 씨에게 그 남자에 대해 보고 했다. 그 남자가 나비와 대화했다는 부분까지 말하려고 했지만, 되려 윤정 씨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 겁나서 간략하게 '수상한 사람'이 있다 정도로만 말했다. 김형석 씨는 윤정 씨의 말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었겠어요?"

 "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말도 말아요. 수상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 그럼 제가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조치요? 뭐 그 사람 출입 금지시킬 거예요?"

 "그건 무리겠지만..."

 "이게 또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출입 금지시켰다가 문제 복잡해져요."

 "네..."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러다 말겠지."

 "네..."


 별 소득 없는 대화였다. 윤정 씨는 나비 정원으로 돌아갔다. 그 남자는 오지 않았고, 그날따라 왠지 나비들이 힘없이 날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는 나비 정원 안에서 퍼덕거리며. 날지 않고 계속 나뭇가지에 붙어만 있는 나비들도 있었다. 윤정 씨는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나비들이 신경 쓰였다. 연약한 나비들이. 

 집에 돌아가는 길,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오랜만의 봄바람이 윤정 씨의 얼굴을 스쳤다.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들 사이로 나비들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올해는 어떤 꽃이 피었나 싶어 윤정 씨가 꽃들을 살펴보았다. 생각해 보면 나비 정원에는 항상 같은 꽃이 피었다 지고는 했다. 길가의 나비들은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이곳저곳 날아다니고 있었다. 윤정 씨는 디디를 생각했다. 시퍼런 날개를 접고 항상 나무 끝에 앉아 있던 디디를. 빛나는 날개를 펴고 남자의 손끝에 앉아 있던 디디를. 


 며칠 후 나비 정원으로 들어선 남자는 평소와는 다른 복장이었다.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밀짚모자 같은 것은 벗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왔다. 그는 나비 정원으로 들어와서 윤정 씨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윤정 씨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그를 알아본 디디가 멀리서 그에게 다가왔다. 하루종일 보이지 않아서 디디를 보러 온 방문객들을 잔뜩 실망시킨 후였다. 그도 디디가 반가운지 손끝에 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한동안 나비 정원을 거닐더니 조용히 돌아갔다. 윤정 씨는 그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윤정 씨는 디디를 제외한 다른 나비들이 한 나뭇가지에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곳에 누가 음식을 흘리고 갔다고 생각해서 물티슈를 가져와 깨끗하게 닦았다. 나비들은 다시 팔랑거리며 날아 좋아하는 자리로 앉으러 갔다. 


 사건이 터진 건 화창한 봄날, 나비 정원 안에는 피어 있는 꽃들이 만개한 무렵이었다. 저녁이 되어 윤정 씨는 정원 이곳저곳을 돌며 치우고 있었다. 미로 같은 정원의 길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귓가에 무언가 파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비가 다가왔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피해 주려는데, 그녀의 눈앞에 기이한 형체가 보였다. 


나비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누군가를 감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모여있는 것 같기도 한 그들은 날개를 자유롭게 파닥이고 있었다.

가장 윗부분에는 디디가 앉아 있었다. 


 "디디..."


 윤정 씨의 손에서 빗자루가 탁 하고 떨어졌다.


 "저기요!!"


 그녀는 그 형체가 그 남자임을 직감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출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비들이 윤정 씨의 시야를 가렸다. 윤정 씨가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쯤 김형석 씨의 비명이 들렸다. 


 "이게 뭐야?"


 그 형체가 유유히 출구로 나가는 동안 사람 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노란 나비가 문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비 정원에 남은 생명체는 바닥에 주저앉은 윤정 씨와 출구 문을 잡고 있는 김형석 씨밖에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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