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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Feb 08. 2024

쉴까?


작년에 얼리버드로 신청해 놓은 2024 서울마라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0km 코스라 준비하는 동안 부상만 없으면 늘 하던 대로 뛸 수 있는 거리다. 겨울이라 많이 뛰지 못한 탓에 체중을 줄이고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더 큰 문제다. 흡사 작년 러닝을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간 듯 힘에 부친다.


'아, 왜 뛰고 있지?'


항간에는 기안84가 쏘아 올린 마라톤 열풍이라고들 하지만 러닝, 마라톤이라는 게 유행이라고 무작정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5km, 10km에도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순간이 열댓 번이다. 다 뛰고 나서도 발목과 오금, 고관절과 햄스트링 통증 때문에 집으로 걸어오는 것도 험난하다. 게다가 마라톤대회를 한번 가보면 하나의 문화가 되기까지 참 오랫동안 잘 빚어놓은 사람들의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작년 10월에는 지인 응원차 JTBC 서울마라톤에 다녀왔다.

비가 내려서인지 러너들은 뭔가 더 끓어오르는 전우처럼 잔뜩 결의에 찬 모습이다. 나도 러닝을 하는 사람이지만 참 알다가도 모를 스포츠다. 체력이 극한에 치닫는 풀코스에 참여하면서 이다지도 설렐 일인가.


뛰지 않는 크루도 조를 짜서 장소를 이동하며 응원한다. 축제를 즐기는 대학생같이 푸르다. 중간중간 SNS용 사진과 영상도 잊지 않는다. 뛰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이나 속도와 각도가 기가 막힌다. 평소에 연습이라도 하는 것인지 자신을 응원하는 목소리에 화보 같은 자세를 취한다.


끈을 묶고 뛰는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 러너가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구두에 정장을 입고 뛰는 사람도 있었다. 러너라면 무엇보다 기능성 옷과 러닝화에 상당히 진심이다. 더군다나 풀코스를 뛰고 있지 않은가. 정장에 구두라니.

누군가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풀코스는 저 정도로 미친 사람이 뛰는 거야. 제정신으로는 못 뛰어. “


광란의 마라톤이다.



비까지 맞으며 40km 이상을 달린 러너들이 200미터도 안 되는 도착지를 마주한다.


마침 참가자가 풀썩 쓰러졌다. 눈밭을 구르듯 몇 바퀴만 굴러도 완주할 수 있을 지점에서 일어나질 못한다. 다 왔다고 종을 흔들며 응원해 보지만 끝내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다른 남성이 도로 중간에 오도카니 섰다. 발에 쥐가 난 것인지, 햄스트링이 올라온 것인지 꽃게처럼 옆으로 발을 이동해 본다. 발을 끌어다 놓는다는 표현이 맞다. 이내 팔뚝으로 눈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주변 크루들과 함께 가슴에 붙어 있는 남성의 이름을 박자에 맞춰 외쳤다.

소리가 귀에 들리기는 할까.

평소 페이스대로 뛰면 1분도 안 되는 거린데 목 놓아 울 수밖에 없는 고통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모르는 사람 이름을 부르다 말고 달릴 때마다 하던 말을 뱉고 만다.


 “아. 왜 이렇게까지 뛰는 거야.”


내가 뛰나, 뛰는 이를 지켜보나 드는 생각은 매한가지다.




노력을 배신하지 않고 성과가 나는 건 운동만 한 게 없다.

공부, 자격증, 취업, 승진.

절실했던 마음만큼 보상받은 기억이 많지 않다.


힘든데 왜 뛰지? 백날 생각하면서도 러닝을 하는 이유다. 시간에 맞추든, 거리에 맞추든 뛰는 만큼 더 잘 뛸 수 있다. 누구보다 내가 안다.  

게다가 뛰기만 해도 잡념이 없어지니 요즘 같은 세상에 이만한 행복도 없다.

추위에 얼굴 핏줄이 터질 것 같다가도 금세 땀범벅이 된다. 티셔츠 색깔이 땀에 젖어 다른 색이 되는 것도 좋다. 온몸으로 운동한 티를 잔뜩 뿜어댄다.


그래도, 뛰러 나가기 전에 드는 생각은 항상 같다.


노면이 얼어 부상 위함이 있으니 쉴까,

추워서 심장에 무리가 갈지 모르니 쉴까,

미세먼지가 많다는데 쉴까,

어제 뛰었으니, 오늘은 쉴까.


결국 뛰면서 또 생각하겠지.

'왜 이렇게 뛰고 있지?'




사진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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