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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코 Oct 23. 2024

[100-87]집에서 즐기는 직업 체험 2탄_요리사

집에 TV가 없으니 늘 심심해요. 핸드폰은 그 당시에 당연히 어린아이에게 멀고 먼 당신이지요. 아이와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해요. 아이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생각해요. 그래서 요리를 시작해요. 회사에 가는 평일에는 아침, 저녁만 준비하면 돼요. 하지만 주말이 되면 삼시 세끼를 하면 몸이 몹시 피곤해요. 조금 덜먹고 안 먹고살면 안 되나 싶어요. 주말이면 푹 쉬고 싶은데 일찍 눈 뜬 아이는 놀아 달라고 보채네요. 주방에서 밥, 반찬을 할 적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봐요. 책을 읽어 달라며 얼굴을 방긋방긋 웃고 있어요. 그러면 밥하다 말고 책부터 읽어줘요. 책을 모두 읽으면 아이는 또 심심해요. 아이에게 파리바게뜨 빵칼을 줘요. 그 칼로 집에서 요리하는 모든 야채를 썰어요. 아주 작은 순간부터 요리사가 되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 채 스르륵 커 가요.

요리사
저에게 음식은 배가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게  하면 그만 이예요. 맛, 색감, 모양 등 그런 거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맛도 잘 모르겠고 배만 부르고 되고 오랜 시간 음식을 즐기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많이 먹어서 몸이 거대해지는 것도 싫어해요. 몸에 살이 붙으면 움직이기 불편하고 화가 나요. 그래서 요리하는 것이 늘 귀찮고 요리하면 맛이 안 나니 하기 싫은 1순위가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날마다 요리를 해야 하네요. 무언가 정해놓고 뚝딱뚝딱 잘 하지도 못해요. 충청도에서 나고 자라 말도 행동도 느릿느릿하네요. 무언가 만들어 내려면 세월이 걸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답답하다며 타박을 해요.
그런데 아이는 달라요. 세 살 때부터 플라스틱 칼질을 시작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니 무엇이든 잘 잘라요. 플라스틱 칼이 익숙해지고 나서 과도칼을 주어요. 어린아이에게 과도칼이 위험하다며 옆에서 난리를 치지만 저는 손가락이 칼에 비면 얼른 반창고를 붙여줄 요량으로 아이의 손에 주어요. 과도칼을 손에 잡은 아이는 신이 나요. 플라스틱 빵칼과 달리 쓱쓱 써는 느낌이 좋은지 제가 요리하는 옆에서 요술 방망이 다루듯이 썰어주니 도움이 되네요. 저는 옆에서 주문만 하면 돼요.
오리 썰어라. 당근 썰어라. 피망 썰어라. 요리를 시작할 때 필요한 야채를 깨끗이 씻어 아이 옆에 고이 두면 쓱싹쓱싹 잘게 쪼개요. 조금 못난이가 되어도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도 잔소리를 하거나 소리치지 않아요. 아이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큰소리쳐서 마음 상하게 하지 않아요. 못난 야채가 있어도 볶음밥에 넣으면 아무도 몰라요. 소금 간으로 척척척하고 나서 아이 입속에 넣으면 아이도 맛있다며 신이나요.
어느 순간 아이는 요리책을 요구해요. 엄마의 요리는 매일 비슷해서 흥미를 잃었는지 책을 보며 새로운 세계에 진입해요. 새로 구입한 요리책을 보며 요리를 해요. 무엇이든 만들어 내요. 원하는 재료만 사다 주면 뚝딱 만들어요. 맛은 물론이고 예쁜 접시에 음식을 소복이 담아요. 아이의 요리 실력이 점점 늘어나서 13살에 주방을 맡겼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남아요. 그래서 퇴근하고 저녁에 오면 아이에게 저녁밥을 하게 했어요. 용돈을 한 달에 15만 원을 주고 재료는 미리 같이 마트에서 사다 놓아요. 마트는 혼자 가기 싫다며 꼭 같이 가기를 원해요.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면 아는 사람이 있을까 봐 신경 쓰이나 봐요. 아이가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하면 식기류와 야채 찌꺼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요.


괜찮다. 괜찮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머릿속 주문이 필요해요.


회사에서 퇴근하면 아이가 만든 저녁을 먹어요. 그리고 저는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지요. 저녁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할 필요없고 요리하느라 진땀을 흘리지 않아요. 첫째 딸이 13세~16세까지 4년동안 저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해부터 공부때문에 둘째 딸에게 저녁을 요구해요. 둘째 딸은 당당하게 15만 원을 손에 쥐어요. 둘째 딸에게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되도록 사용하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이것 저것 잘 만들어요. 어째 간이 딱 맞아요. [만개의 레시피] 앱을 보며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해서 요리해요. 재료비가 들지 않으니 15만 원을 고스란히 통장에 쌓아두어요. 차곡차곡 쌓이는 용돈을 보고 즐기면서 언니보다 요리를 더 잘해요. 둘째 딸이 시원한 열무국수를 했다고 하니 컴퓨터를 끄고 빠르게 퇴근하려고 해요. 두 딸 덕분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요리를 맡기고 마음이 편히 일 다닐수 있어요. 아이들이 커 갈수록 제가 부족한 부분을 가득 채워줘요. 둘 다 공부를 조금 소홀히 해도 마음 내려놓으려고요. 주방에서 요리만 해도 먹고사는데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잘하는 것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다 백종원 선생님처럼 프랜차이즈 사장님이 되면 더욱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맛을 좋아하고 맛을 느끼고 맛을 평가하고 맛을 살리려고 노력한다면 아이가 커서 맛을 잘 내는 요리사가 되겠지요. 아이가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요리만 잘하면 먹고 사는데 문제 없다고 판단하니 마음이 편하고 가벼워요. 욕심을 버리고 몸에 힘을 좀 빼세요. 아이와 절대로 쓸때없이 기 싸움하지 않아요. 물 흐르듯 살다보면 알맞는 직업이 있을거예요. 그럼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새봄아, 오늘은 뼈해장국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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