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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코 Oct 23. 2024

[100-88]집에서 즐기는 직업 체험 3탄_제빵사

삶이 이렇게 흘러가는 줄 모르고 살아요. 아이가 커 가면서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그냥 심심하다는 아이에게 육아서에서 나온 대로 요리를 시작해요. 작은 플라스틱 칼이 아이를 단단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 작은 칼이 후폭풍이 되어 아이는 요리를 즐기다가 빵을 만들기 시작해요. 아이가 만든 따뜻한 빵의 속살을 커피와 함께 먹으며 집에서 빵 내를 맡으며 책을 보는 기분을 같이 느껴 보도록 해요. 그 맛으로 당신을 초대해요.

제빵사
아이는 오늘도 주방에서 북적북적 바쁘네요. 결혼하고 요리를 억지로 해야 하니 요리책이 필요해서 [베비로즈의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 딱 한 권 있어요. 제가 산 책을 뒤로하고 아이는 많은 요리책을 요구해요. 지금은 20권이나 하는 요리책이 책장 가득 있어요. 직장에 있는 동안 아이는 심심함을 달래려고 날마다 주방에서 무언가 만들어요. 주로 한식을 만들다가 어느 날부터 밀가루 반죽을 해요. 그러더니 밀가루 반죽 기계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요. 단번에 승낙하여 사 주어요. 밀가루 반죽 기계가 집에 들어오는 날 이후로 집에 빵 냄새가 날마다 풍겨요. 퇴근하고 문을 열면 식탁 위에 빵이 놓여 있어요.
단팥빵을 만들 적에는 할머니가 주신 팥을 삶아서 곱게 갈아 소를 직접 만들기도 해요. 저는 처음 알았어요. 빵 만드는데 시간이 이렇게 길게 걸리는구나 싶어서 혀를 내두르며 만류해요.


그냥, 사 먹고 말지.


하지만 아이가 만든 반짝이는 얼굴을 가진 단팥빵을 손에 들고 한 입 먹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팥이 보드라워서 계속 먹게 돼요. 기분이 좋아 빵빵한 얼굴이 되지요. 아이는 빵을 만들어 주변인에게 늘 나누어 주어요. 괜히 이쁨을 받는 게 아니에요. 5분 거리의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깨찰빵을 만들어요. 금방 만든 빵을 봉지에 담아 할머니 집으로 향해요. 94세 되신 할머니는 밥맛이 없다며 늘 식빵을 끼고 사는데 손녀가 직접 만든 깨찰빵을 보시면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맛있게 먹어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비법을 꾀고 있는 게 확실해요. 스승의 날이 되면 쿠키를 구워요. 밤을 새워 쿠키를 만든 후 그 위에 먹는 크레파스로 카네이션을 그려요. 선생님에게 감사하다는 문구도 그려 넣으며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해요. 누군가에게 늘 기쁨이 되는 소중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참 대견해요.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오가 튀어나와 주방이 분주해요. 어버이날이 찾아오면 머랭 쿠키를 만들어요. 카네이션 모양으로 만든 머랭 쿠키가 너무 예뻐요. 옷에 매달고 자랑하고 다니고 싶지만 입에 넣고 달달함으로 만족해요. 이렇게 곱게 만든 머랭 쿠키 카네이션을 [만개의 레시피] 앱에 올려서 상품도 받아요. 핸드블랜더가 집에 도착하면서 아이는 머랭 쿠키의 달인이 되어요. 날마다 계란 한 판이 없어지고 노른자만 동동 냉장고에 가득해도 잔소리하지 않으니 아이는 날개를 달고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요.
빼빼로데이가 되면 재료를 한가득 사서 직접 빼빼로에 색을 입혀요. 그 위에 캐릭터가 달린 머랭 쿠키를 대롱대롱 매달아서 멋지게 빼빼로를 만들어요. 한 아름 만들어서 24명의 반 아이들에게 하나씩 맛보게 해요. 괜스레 학교에서 인기가 있는 게 아니지요. 이런 정성으로 학교생활에 임하니 아이는 날마다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워요. 어느 날 마카롱 책을 구입해요. 마카롱이 만들기 어렵다고 계속 실패를 하네요. 엉망진창 모양이 이상한 마카롱 꼬끄만 계속 생산해요. 실패를 계속하다가 어느 날에 예쁜 꼬끄를 완성해요. 그 뒤로 아이는 탄력을 받아 마카롱에 장식을 해요. 먹는 진주, 다양한 색깔 가루, 먹는 색연필 등 마카롱 위에 올리는 장식들이 집에 도착해요. 다디단 마카롱을 매일 먹는 선물을 주어요. 직장에서 스트레스로 얼굴 구기는 날에 아이가 만든 마카롱으로 마음을 위로하며 아이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요. 가끔 거친 언어로 아이를 화나게 해서 다툼이 있지만 모두 못난 엄마가 잘 못 이지요. 미안한 마음에 얼른 사과하고 풀어요. 그래야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아이가 만든 다디단 빵을 입에 넣을 수 있잖아요.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어느 날 아이는 휘낭시에를 만들어요. 직사각형으로 구운 과자이고 '금전상의, 금융의'를 뜻하는 프랑스어 '피낭 시에' 유래한 말로 완성된 모양이 금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마들렌보다 조금 단단한 그것을 만들어요. 중학교 전교회장이 되어 반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며 곱게 포장까지 하고 포장지 위에 반 아이들의 이름을 쓰며 날을 새서 만든 휘낭시에를 학교에 가져가요. 부서지고 깨지고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은 빵은 제가 먹어요. 맛은 그대로 이니 상관하지 않아요. 퇴근하고 그 맛을 보려고 일찍 집에 들어와요. 아이의 손재주 하나로 집 분위기가 좋아지고 빵 향기로 날마다 행복해요. 아이가 제빵사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믿어요.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이 되어 주실꺼죠? 북치고 장구치고 저 혼자 쇼를 해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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