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실존주의 시리즈
10살때 처음 영국을 갔다. 이모와 삼촌은 내가 영국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영국에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 학교에 보내셨다. 시차적응이야 둘째치고 내가 그때 할 줄 아는 영어라곤 예스, 노, 오케이 이 세 마디 뿐이었다. 당연히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어린 마음에 영어 못한다는 사실을 들키기가 싫어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묻는 질문에 예스, 노, 오케이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대답했다. “Where are you from?” “Yes”, “What’s your name?” “No.”, “Do you speak English?” “Ok”. 뭐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픈 광경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은 지나갔다. 친구들하고 축구하고 밥먹고 우당탕탕 하다보니까 어느새 제법 적절한 단어를 구사할 줄 아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확실히 애들은 뭐든 빨리 배운다. 그런데 아무리 말문이 트였다 하더라도 완벽한 문장에 다양한 단어를 구사할 리 없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웃픈 광경들이 몇 가지 떠오른다. 그날도 당연히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한 친구가 심한 태클에 걸려 운동장 바닥에 쓰러졌다. 근데 그렇게 심각한 부상은 아니고 화이팅 한번 하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갑자기 난 괜히 멋잇어 보이고 싶고 화이팅하란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파이팅! 힘내!란 말이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를 모르는게 문제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그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일으켜 세우면서 난 이렇게 말했다.
“파워!, 파워!!”
파워라니...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힘을 직역하면 파워니까...), 일으켜세웠던 그 친구의 눈빛은 대체 뭔소리하는거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내가 영어 못하는줄 알면 눈치껏 알아들은 척을 할만도 한데 그 정도로 심각한 오역이었나 보다.
그렇게 내 영국생활은 시작되었고, 난 그렇게 용감하고 엉망진창으로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한국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당시 학교에 한국인이라고는 나 한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매우 높은 희소성 효과를 누린 덕분에 내 이야기는 꽤나 잘 먹혔다. (지금에야 한국사람이 꽤 많지만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영국, 그것도 먼 북쪽의 스코틀랜드에는 한인들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 또 무슨 신기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궁리하던 차에 난 문득 혈액형이 생각났다. 내가 90년대 중반 영국에 가기 전부터도 혈액형은 이미 유행을 넘어 가장 정확한(?) 심리분석의 분석틀이었다. 전국민을 A, B, O, AB 4등분으로 나누어 A는 소심하고, B는 못됐고, 반면 O는 온순한데 AB는 몹시 특이(?)하다는 근거없는 진단과 해석을 내리곤 했었다.
마치 동양에서 온 주술사라도 된 마냥 친구들의 혈액형을 점괘 맞추듯이 성격과 연관지을 생각에 신이 났다. 그래서 한명 한명에게 넌 혈액형이 뭐냐고 물었는데, 문제는 아무도 자기 혈액형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혈액형이란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는게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물론 영국 사람들도 각자의 혈액형이 있겠지만 그 유형에 성격을 결합시켜 소심하다, 착하다 따위로 구별하는 인식 자체는 없었다. 나중에야 알고보니 이게 일본에서 유래되어 한국에 전해진 것이란다. 지금도 혈액형으로 성격 유형을 구분하는 건 전 세계에서 일본, 한국 밖에 없다.
그후 혈액형 열풍이 지나가더니 이제는 MBTI 태풍이 찾아왔다. MBTI는 그래도 좀 낫다. 꽤 체계적인 설문을 통해서 성격을 분석하고, 유형도 4개에 불과했던 혈액형의 4배수인 16개나 되니까. 나도 그동안 MBTI검사를 여러번 해봤는데, 열에 일곱은 ENTJ가 나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머지 3번은 EFTJ와 INTJ, IFTJ가 한번씩 사이좋게 나온다.) 왜냐하면, 솔직히 고백하건데 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은둔형 외톨이 이런건 절대 아니고, 사람들과 같이 있기보단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훨씬 더)선호하는 쪽에 가깝다. 회사에서 어쩌다보니 축구 동호회 회장에, 독서 동아리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는거 보면 E가 맞는거 같기도 한데, 막상 E들 틈에 끼여 있으면 기가 빨려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는 I로 변하는 것 같다.
휴일에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특히 싫어한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때 유명한 관광지 자체를 잘 안가기도 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가더라도 누구나 다 가보는 소위 말하는 관광명소는 웬만해선 피한다. 기차를 타더라도 사람이 옆에 앉는게 싫어서 좌석 여유가 있더라도 부러 역방향을 예약하는 경우도 많고, 영화관에 갔는데 사람이 거의 없기라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람을 싫어하진 않아도 혼자 있을때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건 사실이다. 신경을 많이 쓰면 아무래도 더 빨리 피곤해지고,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경우는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따라온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긴 하지만 왜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신경을 많이 쓰는 걸까? 왜 한번 더 거울을 보게 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걸까? 뻔한 대답이겠지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시선은 기본적으로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