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애가 우는 데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수도꼭지라는 표현을 쓰다니?"라고 경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조차도 글을 쓰면서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은 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한이가 워낙 눈물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수도꼭지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대한이는 눈물이 참 많은 아이다.
눈물 흘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억울해서 울고,
속상해서 울고,
혼나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등등이다.
그러고 보니, 기뻐서 즐거워서 행복해서 감동해서 우는 눈물은 없고 죄다 비슷한 맥락의 눈물뿐이다.
대한이가 돌이 안되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 차로 부산에 사는 언니집에 갔다. 늦은 밤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 온다고 친정아빠는 지하 주차장까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아빠는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짐이 많은 나와 남편을 대신해서 아기 대한이부터 번쩍 들어 안았다.
늦은 밤이라 주변이 소란스럽지 않게 조심조심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이는데, 그때 그 순간 아기 대한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고래고래 소리치며 세상 떠나가라 우는 아기 대한이 때문에 아빠는 무척 당황해하셨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내가 대한이를 받아 안았는데, 그런데도 대한이는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 나 또한 초보 엄마라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아기 대한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다.
그런 우리 둘 모습에 친정엄마는 "보통은 엄마가 안으면 울음을 그치는데, 엄마가 안아도 우는 건 처음 보네. 허참." 하며 기가 막혀하셨다.
연년생 둘에다가 쌍둥이까지 총 네 명을 혼자 독박육아하신 엄마의 말이라, 엄마의 말에는 무한신뢰를 했고, '우리 아기 대한이는 평범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그때 알았다. 아기 대한이는 누가 달래준다고 해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울음을 그쳐야 했다.
그래서 대한이가 아기일 때는 울까 봐 늘 불안했다. 혹여나 울게 되면 엄마인 내가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주변에 피해를 줄까 봐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대한이가 돌이 지나고 나서는 그나마 말귀를 조금 알아듣게 되니 편해질 줄 알았다.
밤만 되면 안 자려고 하는 대한이를 나는 어떻게든 재우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우리 세 식구만 사는 집이면 상관이 없을 텐데, 그 당시 우리는 시어머니댁에서 지내는 그런 상황이었고, 본가가 있는 부산에 가면 언니집에서 지냈다.
부산에서 지낼 땐, 조카 둘 모두 잘 시간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자거나, 자자고 하면 곧바로 자는 게 나로서는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우리 대한이는 조카들과는 달랐다. 다들 방에 가서 잔다고 해도 꿋꿋이 안 자려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면 나는 또 다들 자는데 방해가 될까 봐 신경이 곤두섰고, 방문을 열고 나가 대한이 혼자 떠들어대면 화가 꼭대기까지 나서 대한이를 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대한이는 또 서럽게 울어댔다. 꺼이꺼이 우는 것도 신경질 나는 상황인데, 울면서 토까지 했다. 토도 그냥 한 군데서만 하는 게 아니라, 포효하듯 여기저기 곳곳에 토를 했다.
안 자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울기까지 하고, 게다가 여기저기 토까지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겨우 어르고 달래 재우고 나면 안도감보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토한 이불들을 빨래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화도 나고 신경질도 나고 짜증도 났다.토한 세탁물은 그냥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안 되기에, 일일이 건더기는 건더기대로 물티슈로 닦아내고 이불이며 옷에 묻은 끈적끈적한 부분은 비누칠해서 손으로 대충이라도 비벼줘야 했다. 그런 다음 세탁기에 돌려야 했다.
이런 상황이 밤마다 꽤 자주 생기니, 나는 밤이 오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방수패드도 깔고,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토를 하려고 하면, 아예 한 군데 정해진 곳에서만 하라고 얘기하는 여유까지 생기긴 했지만, 우는 거 플러스 토까지 하면 정말 답이 없었다.
아무튼 지금은 대한이도 많이 커서, 이제 더 이상 아기 때처럼 울다가 토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까딱하면 우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대한이가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이런 부분이 신경 쓰였다.
덩치는 또래 친구들보다 큰데, 눈물은 그 누구보다 많으니, 혹시나 학교에서 자주 울어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걱정되었다.
집에서도 자주 우니 대한이보다 3살 어린 동생도 오빠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오죽하면 대한이 귀에 대고 조용히 이런 얘기까지 한 적이 있다.
"대한아, 우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우는 건 좋아. 그런데 너무 자주 울면 동생도, 친구들도 대한이를 만만하게 볼 거야. 인간사회도 동물세계랑 같거든. 약육강식의 세상이라고. 대한이가 너무 자주 울면 다들 대한이는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더 만만하게 볼 거야. 그런 건 대한이도 싫잖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여러 사람들 있을 때 울지 말고 혼자 있을 때 마음껏 울어."
며칠 전 아침에도 우리 대한이는 눈물 한 바가지 흘리며 등교했다.눈물 흘린 이유는 늘 그렇듯, 자기는 아무 잘못 안 했는데, 이유 없이 동생이 자기를 때렸고, 그런데도 엄마는 동생은 덜 혼내고 자기만 많이 혼냈다는 것이다.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혼자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흐느꼈다가 또 물 틀어 코 팽 풀었다가 세수도 했다가 하는데,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뭐가 저렇게 까지 속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대한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뭐든지 대한이 편에서 대한이 말만 맞다고 해줬다. 대한이 입장에서 대한이 말만 들으면 대한이를 울게 만든 사람이 다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이가 바라는 대로 대한이가 원하는 대로 늘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줬다.
하지만 대한이가 점점 크면서 그리고 나도 이런 일들을 종종 겪으면서 대한이 말만 듣고 또 대한이 입장에서만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자꾸 대한이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고 판단하게 되니 대한이는 잘못 없는 사람, 고로 대한이는 피해자가 되어버렸고, 어른이고 엄마인 사람이 그렇다고 말해주니 대한이는 그런 생각과 믿음이 더 굳건히 자리 잡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대한이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울 일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물 틀면 나오는 수도꼭지처럼 울 일이 더 많이 생겼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대한이 말만 듣고 대한이 편만 들어주지는 않았다.
동생과의 싸움에서 먼저 선수 치듯 우는 대한이를 보고, 나는 늘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 난다는 말을 시작으로 한 사람만 잘못하는 건 없다며 단호하게 얘기하곤 했다.
사람의 말투와 표정에도 민감한 대한이는 둘한테 똑같이 혼을 내도 동생한테는 뭔가 부드럽게 말하는 것 같고 덜 혼내는 것 같으면 그걸 또 귀신같이 알아챘다.
사실 동생보다 3살 많은 오빠한테 감정이 더 많이 실리는 건 사실이다. 대한이도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동생보다 3살 많으면 조금 더 이해하고 포용해 줬음 하는데, 그러지 않을 때면 부모로서 대한이를 더 많이 혼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눈물 한 바가지 흘리고 등교하는 데 그 모습에 나도 마음이 불편해져 대한이를 꼭 안아줬다. 그랬더니 또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 대한이. 아무 말 안 했지만, 얼굴 표정을 보니, 속상했던 마음이 다 풀린 모습이었다.
나도 눈물이 많은 편이라, 그런 대한이를 이해하면서도 큰 덩치에 비해 너무 마음이 여리고 눈물 많은 대한이가 어쩔 땐 걱정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우는 건 좋은 거라고, 울음을 통해 속에 있는 감정들을 다 쏟아내야 된다고 말하지만, 슬퍼도 울고, 화가 나도 울고, 짜증 나도 울고, 속상해도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대한이를 보며 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눈물 많은 것도 유전인가?'
대한이는 눈물이 너무 많다고 남편한테 얘기하니,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눈물이 많았어. 내가 눈물이 많거든."
그 말을 듣고 나는 푸하고 웃음이 터지는 동시에, 의아함에 '에잉?'하고 말았다.
눈물 많은 건 나라고만 생각했지, 남편이 눈물 많다고는 1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1년을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나는 남편하고 꽤 오랫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는데, 나는 남편이 그동안 나에게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도 좋았지만 그 무엇보다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다 큰 남자가 턱까지 떨며 우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아~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때 생각이 나서 남편한테 곧바로 얘기하니, 남편은 별다른 대꾸 없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저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냥 헤어질 때 습관적으로(?) 운 거였구나.'
속은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나도 눈물이 많은데, 남편까지 눈물이 많다고 하니, 우리 대한이는 당연히 눈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대한이를 낳고 유전자의 위대함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 정말이지, 대한이는 남편을 콕 찍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외모도 외모이지만, 성격, 성향 등 모든 것이 남편과 비슷하고 아니 남편보다 더 진화되었다.
아무튼 대한이가 눈물이 많으니, 나는 저절로 눈물이 마르고 있다. 나도 눈물 많은 걸로는 어디 나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나보다 대한이가 눈물이 더 많고 잘 우니, 나는 울 일이 점점 더 없어진다. 아니, 울고 싶어도 이제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어렸을 땐, 엄마가 혼을 내거나, 티브이에 슬픈 장면이 나올 때면 그렇게도 하염없이 울었었는데, 지금은 눈물 흘리는 일이 일 년에 손꼽을 정도이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아마도 이 또한 대한이로 인해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보다 더 여리고 약한 아이를 보호해야 된다는 그런 모성본능(?)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또 잘 우는 대한이를 관찰자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너무 자주 우는 것도 그다지 보기(?) 좋지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 거라 어쩔 수 없다고 대한이는 말한다. 눈물을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나도 그랬다. 세상에서 눈물 참는 게 가장 어려웠다. 엄마한테 혼날 때, 숨 넘어갈 정도로 꺽꺽 울면 더 혼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더 힘들고 어려웠다.
그래서 대한이도 지금은 내가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얘기해도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은 대한이 스스로 느끼고 터득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대한이도 계속 커가면서,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는 날이 분명 오게 될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