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아프고, 토 나올 것 같다며 계속 "아!!! 아~~~~~~~~!"하고 소리를 내는 대한이를 보고 친정엄마가 한 말이다.
그날 부산 본가에는 언니랑 조카들도 같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나와 엄마, 큰 조카를 제외하고 다 아픈 상황이었다.
특히 대한이랑, 대한이와 동갑인 둘째 조카가 심각했는데, 둘째 조카는 아파도 가만히 힘없이 누워있는 반면에, 대한이는 온 동네 떠나가라 소리 내며 아프다고 했다.
둘(대한이와 둘째 조카)의 상반된 모습이 엄마인 내가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나, 난리법석을 떠는 대한이한테 눈길이 더 갈 수밖에 없었고, 대한이가 하는 행동에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까지 저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이제 약 먹었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말하면 더 힘들어지니까 가만히 누워있어 봐."
나의 얘기에도 대한이는 힘들어하며 계속해서 "아~~~~~ 아~~~~~~"하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물론 대한이는 진짜 아팠고, 엄마인 나는 그런 대한이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렇게 아플 때마다 또는 조금 다칠 때도 아픈 티, 다친 티를 팍팍 내며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니, 나는 그 상황이 이제는 그러려니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않아 졌다.
나는 통증에도 좀 무딘 편이다. 잘 안 아프기도 하지만,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는 편이고, 아파도 그냥 약 먹고 누워있으면 되는 사람이다.
내 주변에는 다 나 같은 사람만 있어서, 나랑은 너무 다른 대한이가 그저 웃기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놀다가 넘어져 오는 날은 모든 일정을 접어야 된다. 그날은 셔터 문을 내려야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걸어오는 모습은 부상병사가 따로 없다. 옳게 못 걷는 걸음걸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보다 웃음이 먼저 나온다. 그런 내 모습에 대한이는 아픈데 왜 웃냐고 소리치지만, 상처를 확인해 보면, 피는 쥐어짜야 나올 정도이니 내가 웃을만하지 않겠는가.
그런 나의 무덤덤한 모습에 대한이는 가끔씩 서운해하기도 하고, 또는 내가 혹시나 웃고 있는 건 아닌지 아픈 자신보다 내 표정을 살피는 데 집중하기도 하지만, 나까지 호들갑 떨면 대한이가 더 불안해하고 걱정할 것 같아 일부러 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하는 것도 있다.
아들이 다쳤다는데 걱정하기는커녕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기는 나를 보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한 엄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통증에 민감한 아이와 10년째 함께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모든 일에 저절로 침착해진다. 어느 날 대한이가 나를 보고 "엄마는 왜 이렇게 침착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침착이라는 단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나라는 사람은 침착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한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가 되고 나서 많이 침착해지고 차분해진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몇 달 전, 아침에 대한이가 일어나서는 뜬금없이 "엄마, 오늘 학교에 가지 말까?"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도 어지럽고 속도 살짝 울렁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 갔을 때, 교실에서 갑자기 토 나오게 되면 큰 일이니까, 그냥 안전하게 오늘은 학교 안 가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
내가 봤을 때, 그리고 그때 그 순간에는 딱히 대한이가 아파 보이지가 않았고, 또 특별히 컨디션이 안 좋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열을 재어봐도 정상이기에), 일단 학교는 가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학교에서 몸이 안 좋아지면 조퇴를 하라고 했다.
본인이 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을 때, 내가 흔쾌히 그러라고 할 줄 알았을 텐데, 자기가 원했던 대답이 아니니 대한이는 약간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지금 속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이대로 학교에 가면 무조건 토한다고~! 교실에서 토하면 어떡해? 선생님이 혼낼 수도 있잖아~"
학교에서, 교실에서 토 나올까 봐 걱정되어 학교를 안 가겠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토 나올 것 같으면 화장실로 달려가고, 그것도 불안하면 검은 비닐을 하나 챙겨주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개근한 나로서는 대한이가 학교를 안 가겠다는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 그리고 나 때는(라테는~~) 아파도 학교는 무조건 갔기에 나름 생각해서 대한이한테 대안을 제시한 거였는데, 내 말이 대한이한테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나 보다.
대한이는 울먹이며 나에게 다시 한번 얘기했다.
"그냥 오늘은 집에 있을게. 왠지 모르게 아플 것 같아."
잘 아프지 않은 대한이이기에, 또 그동안 단 한 번도 학교 안 간다고 한 적이 없기에, 그런 대한이가 학교를 안 간다고 저 정도로 강경하게 말할 정도면 이유가 있겠지 싶어 오늘은 학교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는지 대한이는 다시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학교를 안 가니 대한이의 아침은 아주 평화롭고 여유 있었다.
대한이한테 잠깐 집에 있으라고 하고, 그 사이 난 둘째를 등원 준비시키고,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둘째를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에 대한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엄마 나가고 조금안 지나서 나 토했어."
"어? 진짜? 속이 안 좋았나 보네~ 엄마 얼른 갈게. 쉬고 있어."
"응. 알겠어."
대한이와의 짧은 통화 후, 대한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한이가 한 말은 진짜였는데, 난 솔직히 긴가민가해서 '엄살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살짝, 아주 잠깐 했었기 때문이다.그래도 그나마 학교에 안 보낸 건잘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대한이를 보니 상태가안 좋아 보였다.
바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대충 옷 입히고 혹시 몰라 검은 봉지 여러 개 챙겨 곧바로집 근처 내과로 갔다.
오전이라 병원에 사람들이 많았다. 앉아서 기다리기 힘들어한 대한이는 내 다리에 누워 차례를 기다렸다.
병원에 오니, 대한이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집에서와는 다르게 누가 봐도 아픈 아이의 모습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대한이 차례가 왔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대한이는 나한테 검은 봉지를 달라고 했다. 갑자기 토가 나올 것을 대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은 봉지 손잡이 부분을 양쪽 귀에 걸치려 했다. 진지하게 검은 봉지를 펼쳐서 손잡이 부분을 잡고 힘겹게 귀에 걸치려는 모습이, 그 상태로 의사 선생님한테 진료받으러 진료실을 들어가려는 모습이, 그러면 안 되지만 나의 웃음버튼을 눌려버렸다. 왜 대한이가 하면 다 코미디 같은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고 정말 고통스럽게 참았다. 다행히 대한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웃음참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랑 눈이 살짝 마주쳤는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비닐봉지는 손에 쥐고 있으라고 했다.똑똑 진료실 문을 두 번 두드리고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아주셨다. 말하기 힘들어하는 대한이를 대신해 내가의사 선생님한테 대한이상태를 설명했다. 의사 선생님은 대한이를 이리저리 보더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열감기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대한이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열더니,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다.그것도의사 선생님 면전에서.
그런 상황은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너무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어쩌지 어쩌지 하는데, 그 순간에도 대한이의 토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도 나지만, 그 공간에 같이 있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을 거다. 난감해하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말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봤다. 진지하고 차분한 모습 뒤에 순간 움찔하면서 흔들리던 눈동자를.
그런 상황에서도문득 드는 생각이 검은 봉지를 챙겨 온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고생각했다. 검은 봉지가 없었다면,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었다.
몸까지 들썩거리며 토하는 대한이는 멈출 기미가 없었고, 아무리 아파도 거기서,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 면전에서 토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대한이가 잠깐 아주 잠깐 멈췄을 때 검은 봉지에 얼굴을 박고 있는 대한이를 부축해 진료실을 나와 병원 문 밖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진료실 나오자마자 대한이의 토는 다시 시작이 되었고, 이번에는 들썩들썩거리는 몸에 꾸엑 소리까지 더해져 본의 아니게 병원 안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렇게 진료실에서 시작된 대한이의 구토는 화장실에 가서야 겨우 멈췄다. 토를 해서 속이 편해졌는지 대한이는 씩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 바닥에 토 안 하고, 검은 봉지에만 딱 대고 했어. 잘했지?"
대한이의 선견지명(?) 덕분에 대참사를 면했다.
아이가 통증에 민감하니, 이런 장점이 있구나. 싶었다.
통증에 민감하니, 본인이 미리 아플걸 예상할 수 있어서 대비까지 할 수 있구나. 싶었다.
다행히 대한이는 병원에서 모든 걸 다 게워내서인지 약 먹고 집에서 쉬니 금방 좋아졌다.
병원에서의 구토 이슈(?)는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이고 아찔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유일하게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기억되는 구토 관련 추억이다.
그런데말이다.
생전 잘 안 아픈 난데, 며칠 전이상하게 으슬으슬 추우면서 근육통에 오한까지 오더니, 나도 모르게"아~~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나도 내가 이렇게소리 낼 줄 몰랐다. 소리를 내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우스워 아픈데도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