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 다 같이 차를 타고 어딜 가는데, 차 안에서 기분이 좋아진 대한이가 내게 한 말이다.
난 저 말 듣고 속으로 참 많이 웃었다.
대한이는 정말 말이 많다. 아마 말 많은 대회가 있다면 못해도 3등 안에는 들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말이 많은 아이다.
나도 어렸을 때 말이 많았다.
목소리도 큰 데 말까지 많아서 엄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한테 많은 핀잔을 들었다.
티브이를 보면서 언니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엄마는 시끄럽다고 혼을 내며 리모컨으로 티브이 볼륨소리를 높였다.
"티브이 소리 하나도 안 들린다!"
어느 날은 친할머니댁에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엄청 크게 웃었던 적이 있다.
나의 웃음소리가 할머니 귀에 거슬렸는지 화가 나신 채로 방문을 벌컥 열며 한 소리 하셨다.
"무슨 여자가 웃음소리가 그리 크노!!"
고등학생 시절에는 야자 끝나고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는 소리에 버스 기사아저씨가 엄청나게 호통을 치신 적도 있다.
"어이, 학생! 너무 시끄럽잖아! 조용히 해!"
모두들 나를 보며 말이 많고, 목소리도 크며, 웃는 소리도 시끄럽다고 했다.
어린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게 속상했고 상처가 되었다. 나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 많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혼나는 게 많이 억울했고 나를 혼내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나는 나보다는 100배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큰 대한이를 이해했다. 아주 격하게 말이다.
그래서 대한이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다 귀담아 들어줬고, 성실히 대답해 줬다.
그리고 대한이를 보면서 어릴 적 나에게(말 많다는 이유로 ) 혼을 냈던 수많은 사람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한이는 남편과 모든 것이 닮았지만, 유일하게 안 닮는 부분이 딱 두 가지가 있다.
말 많은 것과 목소리 큰 것.
말이 너무 없고,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내성적인 남편은 목소리도 작다. 노래방에서 노래 2곡 부르면 목이 다 쉴 정도로 성대 쪽은 약한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라, 대한이가 말이 많아지면 남편은 많이 힘들어했고 지금도 힘들어한다.
남편이 컨디션이 좋은 날은 대한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고 티키타카도 잘 되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대한이의 말이 귀에 한번 거슬리면, 대답은 둘째 치고라도 듣는 거 조차 힘들어서 짜증을 낸다.
그런 대한이를 보면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가 많다. 물론 남편 성향도 잘 알기에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도 이해는 간다.
대한이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직업 선택할 때, 말 많은 직업위주로 선택하면 되겠다고.
야구를 좋아하니, 대한이의 현재 꿈은 야구선수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야구 채널부터 돌려 야구 경기하이라이트부터 본다.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보니, 야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이다. 각 팀의 야구 선수는 기본이고, 야구 선수들마다 특징도 다 알고 있다. 심지어 각 팀의 야구선수들 응원가까지 다 외우고 있다. 그 정도로 야구에 진심인 아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봤을 때, 야구선수로서의 역량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물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야구 선수로서 큰 기대를 걸진 않는다. 다만, 야구에 대해서는 지식이 빠삭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 이렇게 꾸준히 야구를 좋아하다 보면 '야구선수가 못되더라도 야구해설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희망을 살짝 걸어본다. 이런 얘기를 대한이한테 하니, 대한이도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 근데~ 있잖아~"
우리 대한이는 아무리 피곤해도 곧바로 잠드는 법이 없다. 꼭 엄마로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자기 전 말하는 게 좋다는 친정엄마의 말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들어주곤 있지만, 말 많은 내가 봐도 우리 대한이는 정말 킹 오브 킹이다.
오죽하면 대한이보다 3살 적은 동생이 "오빠 그만 좀 얘기하고 자자."라고 할 정도이다. 그러면 무안해서라도 잘 법도 한데, 대한이는 동생의 핀잔해도 끄떡없다.
대한이는 하루동안 있었던 일, 또는 하루동안 느꼈던 감정에 대해 주로 얘기하는 편이다.사실 나도 대한이가 하루종일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에, 먼저 알아서 얘기해 주면 나로서는 땡큐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 네버엔딩스토리가 되면, 나도 사람인지라 지친다. 자야 할 시간이라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묵직하게 한 마디 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만 얘기하고 자자!"
'언제쯤 이 말을 그만하게 될까. 이 말을 그만하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한편으로 대한이가 말이 많아서,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보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먼저 얘기해 주니, 고마울 때가 더 많다.
대한이와는 다르게 말이 별로 없는 둘째는 내가 유치원에서 어땠냐고 물어봐도 구체적으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대한이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 차라리 말이 없는 것보단 말이 많은 게 더 낫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말이 많아서 나쁜 점보다 말이 많아서 좋은 점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기에 대한이가 주변에서 말 많고 목소리 크다고 핀잔을 줘도 굴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말 많은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한다.
나도 말이 많았고 말하기를 좋아했기에, 난 대한이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지지한다. 대한이는 하루 에너지를 운동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다 소모하지 못했음 말로써, 말을 해서라도 에너지를 소모해야 된다고 한다. 난 진즉에 대한이가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대한이 스스로도 자기 객관화가 되는가 보다. 자기 생각과 자기감정을 잘 설명하고 표현하는 대한이의 모습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면서 동시에 부럽다는 마음도 든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그러지 못했기에 대한이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드니 말수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라, 어렸을 때 말 많던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다. 누구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나, 어렸을 때 말 많다고 목소리크다고 어른들이 혼내지만 않았음 어쩌면 더눈치 보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더 당당하게 나의 의견과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요즘 대한이는 학교에서도 질문하고 싶은 게 많은데, 너무 자주 질문하면 선생님이 화를 낼까 봐 질문을 잘 안 한다고 한다.이런 얘기에는 어떤 말을 해줘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정도가 최선일 것 같다.
"아들아~ 학교생활은 사회생활이니만큼 적당히 눈치껏 낄낄 빠빠(?)를 잘해줘야 되거든~엄마가 살아보니, 결국 말 많은 사람들은 싫은 소리 안 들으려면 눈치가 빨라야 되는 게(눈치를 봐야 되는 게) 현실이더라고~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