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는 게 아니라, 밝히는 것!

관계의 안정보다 자기 확장에 집중하자!

by 찡따맨



다들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늘 그것을 찾는다. 가족에게서, 연인에게서, 세상이 우리를 기억해 주는 방식에서. 하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 어머니 혈육과 같은 사랑을 받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연인의 인정, 위안을 통하여 사랑을 느끼려 한다. 그러나 위안, 인정받는 것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다. 사랑은 관계 속에서 확인받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비롯된다. 다시 말해 사랑은 연인의 인정과 위안을 통해 드러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관계 초기에는 연인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기 확장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확장의 기회가 줄어들면 사랑의 열정도 사그라든다. 난 이게 권태기의 작동 원리라 생각한다. 반대로 자기 확장이 지속된다면 열정적인 사랑도 유지될 수 있다. 난 이 지점에서 사랑의 지속 여부가 연인의 인정, 안정, 색다른 보상보다 개인의 내적 성장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단순 상대에게서 얻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 변화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경험이다. 고로, 더욱 단단한 사랑을 원한다면 연인을 통해 찾을 게 아니라, 연인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확장된 나를 발견하고 더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랑도 행복도 스스로 발견하는 것


모든 삶, 사랑의 목적이 행복인가? 그런데 행복은 외부가 아니라 내 인식에서 오는 것이다. 사랑이 주는 기쁨, 지식이 주는 환희,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은 깊이 있는 인식에서 나온다.


연인의 달콤한 말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존재가 진정으로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따라온다. 물론 나 같은 찡따는 예쁜 여성에게 선택받는 일이 상당히 가치 있다. 그 순간 나라는 존재가 가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만의 진리를 위해, 나만의 일을 하는 순간이야 말로 예쁜 여성에게 인정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아주 근소한 차이이지만.)


여기에서 행복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으로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는 의미의 존재, 하나는 의미의 탐색이다.

의미의 존재는 자신의 삶을 중요하고 목적이 있으며 가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창작할 때, 그것이 단순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연결된다고 느낀다면, 이는 의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면적 확신이다. 사회적 인정, 재산, 명예와 같은 외부적인 요소가 사라져도 내 삶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의미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의 탐색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고 증진시키려는 노력에 가깝다. 누구나 처음부터 자기 삶의 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태어나는 게 아니다. 경험과 성찰을 통해 점진적으로 삶의 의미를 탐색하며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찾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돈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한다. 누군가는 봉사활동, 누군가는 지식 탐구, 누군가는 인간관계, 사랑을 통해 찾아나간다.

이 두 가지 차원으로 삶을 들여다보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식의 깊이도 깊어지기 때문에 행복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사랑 또한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행복은 타인의 인정이나 외부의 보상이 아닌 스스로 가치를 찾아가고 의미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사랑, 지식, 진리를 탐구하는 이유 또한 결국은 자기 확장을 통해 내면의 깊이를 더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형성해 나가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내가 증명하는 것


물론 초조함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명성이 나를 빛나게 해주지 않을 때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묘비에 깊게 새겨진 이름과 업적조차 조용히 잊힐 것이다. 막대한 권력과 부를 일구며 불멸을 꿈꾼 이들도, 결국 잊히는 게 인간 아니던가. 우리는 한낱 기억 속에 남을 뿐이지만, 사실 인간의 기억력을 형편없다. 수많은 이름들이 사라질 것이고 내 이름 또한 그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타인의 감정과 행동을 통해 확인하려고 한다. 연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표현하는지, 헌신적인지 말이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사랑을 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수동적인 태도다. 사랑이 영원할지, 끝날지가 내 존재를 결정할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이유다.


사랑을 타인에게서 확인하려 하면 불안과 초조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연인의 사랑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면 불안해지고, 애정 표현이 줄어들면 사랑이 식었다고 단정 짓는다. 이러한 불안감은 결국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에 의존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단순히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게 아닌, 내가 어떤 태도로 사랑을 대하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가는가에 있다.


내가 사랑을 증명한다는 건, 능동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랑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건강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유무가 아니라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행동과 태도이기 때문이다.


고로 더 의미 있는 사랑을 원한다면, 연인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들여다보며 답을 찾을 게 아니다. 내 삶에 몰입하고 성장하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 자기 확장과 내면의 성장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사랑도 자연스럽게 단단해지고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으려 애쓸 게 아니라,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관계에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면이 성장했을 때 사랑을 더 환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며, 깊어진 인식을 바탕으로 개인의 행복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는 게 호구가 아니다


물론 '상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태도'를 호구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사랑을 거래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무엇을 주는 것이 손해이며, 상대에게 더 많이 주는 게 이용당할 위험이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사랑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들여다 보아도, 사랑은 주고받으며 균형을 맞추는 저울질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고 더 깊이 연결되는 과정이다.


사랑에서 주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나와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행위다. 많은 사람들이 받는 것에 집중하지만, 오히려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관계를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고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는 단순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욱 충만하게 이끌고, 관계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굳이 예를 들면 연인에게 더 좋은 지갑을 선물해주기 위해 돈을 더 열심히 모아야곘다는 다짐이 있다. 주는 것을 꼭 물질적인 것으로만 국한시킬 수 없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주는 것이고 용기를 주는 것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연인의 이야기를 더 둘어주기 위해 마음을 열어아겠다는 다짐, 연인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오늘은 평소보다 탠션을 높여야겠다는 다짐이 대표적이다.


물론 일방적인 희생이 반복된다면 건강하지 않은 관계다. 하지만 사랑해서 주는 게 반드시 자기희생을 뜻하지 않는다. 사랑을 준다는 건, 단순 상대를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스스로가 사랑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하는 것은 결국 나이다. 자기확장은 내가 사랑을 주면서 성장하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라면, 내가 주는 것에 지치고 감정적으로 고갈되는 상태는 이와 반대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계속 줄 때 자신이 확장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소진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 한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은 자칫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사랑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려는 태도, 다시 말해 자기 확장에 가깝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할 것인지, 상대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므로 호구가 아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려는 태도보다 줄 수 있는 태도를 가질 때에야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지속 가능해지는 이유다.


고로 사랑에서 주는 것은 호구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그 관계를 더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으며, 이는 삶의 에너지로도 이어진다. 내가 주는 것으로 상대가 성장하고 나 또한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성숙하고 이상적인 사랑이 아닐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불안과 기대에 휘둘려 사랑을 밝힐 수 없다. 반대로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가면서 서서히 밝힐 줄 안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호구가 아니다. 더 깊고 건강한 사랑을 위한 시작이다.





흠~ 글이 너무 길어졌따.

그러면 오늘의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줄까~?~?~?~?

흠~~~ 좋아. 딸기 700g으로 정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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