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미래를 위한 열쇠

우리 현대사 다시 읽기 :: 강사 인터뷰

by 기픈옹달

역사는 암기 과목이 아니야.


외울 게 많아 역사를 싫어한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행히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중학교 역사 선생님 때문입니다. 우선은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은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늘 칠판 전체를 꽉 채우는 필기였습니다. 수업 때마다 칠판 가득 연표가 그려졌어요. 선생님은 칠판 한가운데 세로줄을 그으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세로줄을 따라 좌우로 여러 인물, 사건들이 나열되었어요.


시험만 생각하면 그 많은 필기가 결코 반가운 건 아니었겠지요. 죄다 외워야 할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칠판 가득한 필기를 보면 부자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커다란 세계를 알았다는 만족감 때문이었을 거예요. 마치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느꼈다고 할까요?


역사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으로 이루어진 큰 흐름을 읽는 공부라 생각합니다. 몇 년, 무슨 사건이라는 식의 한 마디로 수렴되지 않는 풍성함이야말로 역사의 큰 매력 아닐지요. 만약 암기뿐이었다면 역사책이 백과사전보다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 거예요.



이렇게 저렇게 살았다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매주 소설을 한편씩 읽는 수업이었어요. 그런데 방점은 ‘소설’보다는 ‘역사’에 있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이후 조선말부터 현대까지 시대 순으로 여러 소설을 읽었어요. <태백산맥>, <엄마의 말뚝>, <당신들의 천국>, <무진기행>, <난쏘공>과 <외딴방> 등등.


소설로 현대사를 읽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우선 현대사는 거의 배우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현대사는 시험에 좀 덜 중요하잖아요. 게다가 소설의 구체적인 삶으로 만나는 역사는, 몇 개의 숫자로 외우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살아 숨 쉬는 삶을 만났다고 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현대사는 거의 숫자로 이야기됩니다. 6.25에서 4.19, 5.18 등등. 숫자로 외다 보니 그 사건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덜 주목하게 되는 거 같아요. 따져보면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었던 구체적인 사건인데 말이지요. 사건만 남고 삶은 사라져 버리지요.


우리는 사건보다 삶에 주목하려 해요. 매 시간 이런 질문을 던져볼 예정이에요. 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과연 우리가 저 시대 저 상황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등등.



일제 강점기에서 세월호까지


강좌에서는 영화와 소설을 오가며 현대사를 새로운 눈으로 읽어보려 해요. 시대를 더 생생하게 느껴보자는 목적이에요. 스크린과 책을 오가며 우리는 긴 여정을 떠납니다. 비슷한 주제로 영화와 소설을 엮어 보았어요.


첫 주제는 일제 강점기를 다룰 거예요. 영화 <동주>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봅니다. <동주>는 잘 알려진 대로 시인 윤동주를 그린 작품이지요. 일제 치하 고향을 떠나 먼 타국으로 떠난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 힘겹게 정착한 소녀의 이야기도 있어요. 이들이 살아낸 그 시절 그때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로 우리는 좌우 이념 갈등을 살펴볼 거예요. 영화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랍니다. 한편 최인훈의 <광장>은 한국 전쟁의 포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에요. 벌써 50년 넘게 지났지만 남과 북의 이념 갈등은 여전히 우리 삶을 괴롭히고 있어요. 갈등을 푸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 갈등이 대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할 거예요.


세 번째로는 군사정권 시절을 봅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4.19에서 10.26까지 시대의 변화를 재미나게 보여주고 있어요. 효자동 바로 옆, 청와대의 주인을 따라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볼 수 있어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의 아픔을 다루었습니다. 큰 상을 받은 소설로 유명하지만, 소설이 주는 울림은 그 상의 이름보다 훨씬 클 거예요.


네 번째 주제는 세월호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 재난을 다루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나 수 십 년이 지나도 기억되어야 할 사건이어서 넣었습니다. 영화 <괴물>은 직접 역사적 사건을 다룬 건 아니지만 세월호 사건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마지막으로 읽을 <그래도 봄이 올 거예요>는 세월호 유가족 형제자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마지막 시간에는 답사를 떠나려 해요. 장소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수업에 함께 모인 친구들과 장소와 일정을 짜 보고 싶어요. 영화와 소설 ‘속’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직접 발로 찾아가 눈으로 보려 해요. 왜냐하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사실 수업을 기획하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가슴 아파하고 슬퍼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요. 좋은 일도 많을 텐데 왜 이런 일들만 넣었을까... 이 여름 이걸 함께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이 수없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이 사건들을 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저를 휘감았어요.


아마도 그것은 지난가을과 겨울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던 시간 때문이었을 거예요. 큰 목소리로 여러 말을 외쳤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달라붙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전과 다른 시대를 살 수 있을까?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대체 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할까요? 요즘 워낙 속이는 말이 많아 쉽게 속지 않기 위해서 역사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살아갈 이 시대를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흔한 말을 입에 올려야 하겠어요. 역사는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우리는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이야기할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현대사'란 길게 늘여놓은 현재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어요. 지난 광장에서 촛불을 들면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본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있어요. 산과 바다로 떠나는 것도 좋지만 스크린과 책 속으로 떠나는 것도 좋은 여행입니다. 과거의 다양한 삶 곁에 서서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으로 나무와 풀은 건강한 숲을 이루지요. 우리에게도 이 여름 큰 성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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