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준다는 것 6
사마천의 주요 능력 가운데 하나는 복수의 인물을 통해 어떤 정감이나 삶의 태도와 같은 것을 점차 심화시켜 전달한다는 점이다. 조말에서 시작한 자객의 이야기는 점차 고조되어 섭정의 이야기에 이른다.
섭정은 원수를 피해 어머니 누이를 데리고 제나라로 가서 살았다. 한편 엄중자는 한나라 재상 협루에게 원한을 사서 제나라로 쫓겨온 사람이었다. 그는 섭정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자객으로 쓰려 마음먹는다. 이를 위해 그를 찾아가 그와 사귀는 동시에 그를 극진히 대한다. 특히 섭정의 늙은 어머니를 잘 대해 주었다. 엄중자가 섭정 어머니의 장수를 축원하며 황금 2000냥을 바치려 하자 섭정은 자신이 직접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으니 이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에 답하는 엄중자의 말이 재미있다.
“내게는 원수가 있는데 그 원수를 갚아 줄 사람을 찾아 제후들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제나라에 와서 당신의 의기가 몹시 높다는 말을 듣고 황금 2000냥을 드려 어머니의 음식 비용에나 쓰시게 하여 서로 더욱 친하게 사귀자는 뜻이었지 어찌 감히 달리 바라는 게 있겠습니까!”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을 자객으로 써서 원수를 갚고 싶다는 말이다. 그 말에 섭정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없다며 한사코 그가 건네고자 하는 예물을 거절한다. 그러나 엄중자는 끝내 그에 대한 예의를 거두지 않았다.
훗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섭정은 엄중자를 찾아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행동하겠다며. 이렇게 사마천은 '알아줌(知己)'이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박하고도 강렬한 인정 욕구에 삶 전체를 추동하는 힘이 있다.
섭정은 홀로 협루를 죽이려 한나라로 향한다. 그는 홀홀 단신으로 침입하여 협루를 죽이고 주변 병사들 수십을 죽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는 일.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냈으며,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 죽었다. 그가 이토록 참혹한 죽음을 자처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아가 자신이 누구의 부탁을 받아 이 일을 하는지를 숨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나라에서는 그의 시체를 저잣거리에 내놓고 그가 누구인지를 물었는데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누이가 그를 찾아와 울며 섭정임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몹시 슬퍼하다 섭정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나아가 그를 위해 자신을 지운 사람을 현인賢人이라 평가한다. 현賢이란 어떤 능력(能), 탁월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단순히 인품, 도덕적인 가치에 갇히지 않는다. 이 강렬한 삶에도 이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마천은 말한다. 그에 걸맞게 그의 죽음 역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전한다. 그의 명성은 진晉, 초楚, 제齊, 위衛에 전해질 정도였다.
마지막 사람은 형가. 그는 축을 타는 고점리와 친하게 지냈는데 함께 술을 마시고는 고점리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한다.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방약무인旁若無人!
사마천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매우 길게 서술하고 있다. 여러 자객 가운데서도 그를 맨 마지막에 놓은 것은 그가 죽이려던 것이 범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훗날 진시황이 되는 진왕 영정.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에게 암살을 부탁받는다. 연나라 태자는 일찍이 영정과 함께 조나라에서 어릴 적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영정이 진나라 왕이 되자 연나라 태자는 진나라에 볼모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웬걸. 옛날의 친구가 더 못되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 아닌가?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가기까지 두 사람의 죽음이 더해진다. 하나는 형가를 태자 단에게 소개해준 전광이다. 그는 태자 단이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며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비밀로 해달라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일에 의심을 사는 자체를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광은 절협節俠은 그처럼 의심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입을 닫기 보단, 아예 스스로의 입을 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편 연나라에는 진나라에서 도망처 몸을 숨긴 번오기라는 인물이 있었다. 당시 진왕은 이 번오기에게 막대한 돈을 걸었다. 필부가 진왕을 만나려면 무엇인가를 가져가야 하는 법, 형가는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의 지도를 가져가겠다고 말한다. 형가는 직접 번오기를 찾아가 진시황을 죽이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번오기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고 한다. 그 역시 진시황을 원수로 생각하며 그 원수를 갚고자 잠을 못 이루었던 사람이기에.
아무리 진시황이라는 거물을 죽이러 떠나는 길이라지만 형가의 길에 얽힌 두 사람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낯설기 그지없다. 대체 이들은 어찌도 저렇게 결연하게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어떤 지울 수 없는 잔혹함, 핏빛 얼룩이 형가의 이야기에 묻어 있다.
사마천은 형가가 역수를 건너 진나라로 떠나는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하였다. 전송하는 이들은 모두 흰 옷과 관을 쓰고 형가를 보낸다. 거사에 앞서 제사를 치르고,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태자와 이 일을 알고 있는 빈객들이 모두 흰색 옷과 모자를 쓰고 그를 전송했다. 역수 가에 이르러 도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행길에 올랐다.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는 여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변치의 소리를 내자,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떨구며 울었다. 형가는 앞으로 나아가며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 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강을 건너기에 앞서, 저 죽음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가기에 앞서 부르는 형가의 노래와 이들의 전송 장면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성공할 수 있을지 혹은 그렇지 못할지 모르는 길, 그러나 건너 가면 필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두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그는 장사壯士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야 말로 장사라고 하지 않을까?
형가의 발걸음. 그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앞서 죽은 두 사람의 목이 있고 이제 필멸을 향해 나아가는 형가 자신의 목숨이 있기에 그렇다. 한편 사마천은 그 상대되는 반대편에 진시황의 목숨을 놓음으로써 역수를 건너는 형가의 이 길에 무게를 더한다. 그는 떠나며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의 지도, 그리고 거사를 위해 마련된 날카로운, 끝에 독약을 묻혀 조그만 상처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비수를 들고 진왕을 만난다. 진왕을 만나는 장면, 진왕을 찌르고 그 찌르는 칼을 피해 달아 나는 진왕, 칼을 빼어 들고 형가를 마주하여 그의 왼쪽 다리를 베는 장면, 피를 흘려 쓰러진 뒤에 비수를 던져 기둥에 맞히기 까지. 사마천은 그 순간을 매우 세세하게 그려낸다.
형가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진시황은 연나라를 정벌하도록 한다. 그와 관련된 인물들 역시 진나라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 고점리도 몸을 숨겨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진시황 곁에서 축을 연주하는 악사가 된다. 대신 진시황은 그가 앞을 못 보게 만들었다. 고점리는 축 속에 납을 넣어 무겁게 한 뒤 진시황의 목숨을 노린다. 어느 날 진시황을 쳤으나 죽이지 못했다. 이후 진시황은 사람을 더 멀리 했다고 한다. 진시황을 고립무원으로 이끈 데는 형가와 고점리의 역할도 있었던 셈.
<자객열전>은 묵직하다. 비록 다른 다섯 사람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죽음을, 그리고 거꾸로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사마천의 글을 읽으며 늘 느끼는 답답함을 여기서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떤 묵직함으로 말을 건네는데 이를 설명할 길이 없다. 말의 빈곤, 표현의 부재가 아쉬울 뿐이다. 아니, 어쩌면 이는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기보다는 내놓을 말들이 그 무게에 비하면 지독히도 가벼운 것들 뿐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묵직한 말과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