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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15. 2021

사슴일까? 말일까?

제국을 열고 만세를 꿈꾸다 5

진시황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곁에는 승상 이사가 있었다. 그리고 막내 아들 호해, 환관 조고가 함께 있었다. 진시황은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첫째 아들 부소에게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편지의 전달을 맡은 조고가 중간에서 이 편지를 빼돌리고 만다. 


위에서 언급했듯 진시황은 따로 태자를 두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나누지 않으려는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죽음이나 후계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그는 불과 50이 채 안 되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후에도 한참이나 자신이 천하를 다스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영원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첫째 아들 부소는 일찍이 진시황의 사상탄압을 반대했다. 이에 진시황은 그를 북쪽 변경으로 보내버렸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음을 앞두고 떠올린 것은 내쫓은 첫째 아들 부소였다. 비록 후사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진시황이 죽음에 앞서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그를 후사로 세운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막내아들 호해와 친했던 조고는 중간에 편지를 가로채고는 부소 대신 호해를 황제로 세우기로 마음먹는다. 


조고는 부소에게 내린 옥새가 찍힌 편지를 쥐고 공자 호해에게 말했다.

"황상께서 숨을 거두셨지만 조서를 내려 여러 아들을 책봉하여 왕으로 삼지 않으시고 맏아들에게만 글을 내렸으니, 맏아들이 오면 곧바로 즉위하여 황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공자께서는 한 치의 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시겠습니까? … (중략) … 작은 일을 돌아보다가 큰일을 잊어버리면 뒤에 반드시 재앙이 닥치고, 의심하며 주저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과감하게 행동하면 귀신도 피하고 뒷날 성공하게 됩니다. 공자께서는 이 일을 단행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열전>


"The Winner Takes It All" 모든 것을 갖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거나. 호해는 조고의 꾀임에 넘어간다. 조고는 이후 이사까지 설득하여 호해를 황제에 봉하기로 결정한다. 조고가 이들을 설득하며 들었던 근거는 간단한데, 이후 부소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당신들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내쫓김 당할 텐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게다가 지금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상황인데 가만히 있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결국 조고와 이사는 진시황의 죽음을 숨기고 함양으로 돌아온다.


이들은 진시황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수레 안에 음식을 들이고 내는 것을 예전과 똑같이 했으며, 나중에 수레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자 이를 숨기기 위해 뒤따르는 수레에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를 싣도록 했다. 나아가 부소에게 편지를 보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고, 당시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변경을 지키고 있던 몽염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인물에게 정보가 독점된 현실이다. 황제의 건강에 갑작스럽게 이상이 나타났다는 것도, 황제가 죽었다는 것도 조고와 이사 이외의 다른 신하들을 알지 못했다. 조고와 이사가 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부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몇 사람만이 직접 황제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레에 음식을 넣어 황제의 죽음을 숨겼다는 데서 볼 수 있듯 황제는 수레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 그는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했을까. 우선 여러 차례 암살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궁에서 형가에게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을 겪었다. 그뿐인가 하면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수레가 공격받는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훗날 한 고조의 꾀주머니가 되는 장량의 짓이었다. 


그 결과 그는 자신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았고, 나아가 모든 일을 소수의 사람을 통해 처리하였다.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까지 꺼려 수많은 궁을 지어놓고 자신의 소재를 비밀로 숨겼다. 이는 소수의 신하에게 전횡을 일삼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호해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조고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버지 진시황이 짓기 시작했던 아방궁을 완성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궁이 얼마나 큰지 이 노역에 참여하는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할 정도였다. <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 궁의 모습은 이렇다.


동서로 오백 보이며 남북으로 오십 장丈으로 위쪽에는 일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쪽에는 다섯 장 높이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 사방으로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궁전 아래에서부터 곧장 남산까지 이르게 했다. 남산 봉우리에 궁궐 문을 세워 지표로 삼았다. 다시 길을 만들어 아방에서 위수를 건너 함양에까지 이어지게 하여 북극성과 각도성이 은하수를 건너 영실까지 이르는 것을 상징했다. 아방궁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되면 이름을 선택하여 다시 명명하려고 했다. 아방에 궁전을 지었기 때문에 천하가 그것을 아방궁이라고 했다. 

<진시황본기>


이사는 이세황제에게 간하여 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조고는 이사를 모함하여 죽인다. 그 역시 진나라의 여러 재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최후를 맞았다. 이사를 처치한 조고는 황제의 자리까지 넘본다. 그러나 주변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법. 이에 적을 가려내기 위해 하나의 꾀를 낸다. 바로 사슴을 바치고 이를 말이라고 한 것이다. 


이사가 죽고 이세황제가 조고를 중승상으로 삼자, 크든 작든 모든 일은 조고가 결정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이세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이세황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좌우에 있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이세황제는 놀라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태복(점을 치는 관리)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이사열전>


<진시황본기>의 기록은 좀 다르다. 신하 가운데 사슴이라 한 자들이 있었으나 이후 조고가 이들을 기억하고 죄를 뒤집어 씌워 죽여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이다. 


이세황제 호해의 이야기는 간신들에게 둘러싸인 황제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 진시황은 천하의 모든 일을 제 손으로 처리하려 했으나, 아들 호해는 어떤 일도 제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위인이었다. 사슴과 말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아가 스스로를 의심하였으며 결국 국정을 멀리하고 구중궁궐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미 천하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사기>는 이세황제 원년, 그러니까 진시황이 세상을 떠난 직후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전한다. 그러나 반란군이 함양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이세황제는 목숨을 잃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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