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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사주세요~ 해야지

뇌수술을 받고 재출혈이 되기 전까지는 혼자서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회사는 그만둬야 했지만, 카페를 아내와 함께 운영할 정도로 지금보다는 상태가 좋았다. 재출혈이 되고 나서도 감마나이프 방사선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카페 일을 하진 못했지만, 혼자서 간단한 심부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갑자기 재료가 떨어져서 급하게 사 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내가 나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조금은 있었다.

 

2018년 9월에 두 번째 감마나이프 방사선 수술을 받았다. 머리를 절개하지 않고 감마선을 이용해서 병변을 제거하는 방법이라 부담이 덜했지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고, 2~3년 정도 경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 직후에는 오히려 증상들이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술 후 나는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없었다. 이명이 심해져서 아내와의 대화도 힘들어졌고, 복시가 심해져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결국 집안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스럽게 복시와 이명은 아주 조금씩 회복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과 대화도 할 수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산책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서는 바깥활동을 할 수 없다. 이명과 복시가 아직 그 정도로 회복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바깥활동을 못하게 되면 아쉬운 것들이 많이 생긴다. 한번 보자고 하고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하면서 미뤘던 여행,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가보자던 골목식당 맛집, 이미 알고 있는 맛이라며 외면했던 디저트 카페, 배우고 싶었던 하모니카, 다음에 또 하겠지 하던 미술전시, 개봉하면 볼 것이라 벼르던 영화, 등등……

 

당연하던 일상에서도 아쉬움이 있다. 동네 공원의 산책, 동네 헬스장의 신명 나는 음악소리, 제주도 못지않은 뒷산 둘레길, 무엇이든 다 있는 다이소 쇼핑, 반찬이 맛있는 지하철역 근처 순두부집, 등등……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동네슈퍼의 간식 쇼핑이다. 성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서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 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활동. 특히 늦은 밤 입이 심심할 때 근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사 먹던 주전부리와 아이스크림들...... 정말 소소한 행복 어찌 보면 경제적 독립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활동이다! 

 

지금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아내에게 부탁해야 한다. 왜 항상 밥을 먹고 나면 달고 짠 바삭거리는 것들이 생각나는지 미스터리다. 처음에는 내가 안쓰러운지 부탁할 때마다 바로바로 사다 주었다. 하지만 거의 매일이다 보니 이제는 아내도 순순히 응해주진 않는다.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나를 약 올린다.

“어허! 사주세요~~라고 해야지!”

라고 하며 나를 완전 꼬맹이 취급을 한다. 어른에게 부탁을 할 때는 공손히 하는 것이라며 나를 어린이 취급이다. 과자도 사다 줘야 하니 어린이 아니냐며 놀린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얼버무리듯 사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린이가 똑바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며 끝까지 놀린다. 결국 제발 사달라며 간곡히 부탁을 해야 한다…… 젠장…… 자존심이 상한다. 얼른 회복하고 싶다. 나의 회복의 불씨를 댕기는구나

 

마음속으로 기도라는 것을 해본다. 많이 바라지 않겠습니다. 혼자서 동네 편의점에 갈 수 있을 정도만 회복하게 해 주세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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