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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09. 2020

출근 후 잠 오면 마음대로 자는 대표

이런 특혜쯤 있어야 살죠.

 (이 글은 일인 창업자가 역경을 어떻게 견디는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대표의 갑질 고발이나 직장 험담이 아님을 밝힙니다. 지극히 소소한 일상 이야기로 시국을 대변하려는 꿍꿍이도 깔려있으니 찾아보면 재미있겠죠. 갑자기 메인에 떠서 조회수가 폭증해, 급히 글의 성격을 미리 밝힙니다. 읽으실지 마실지 벌써 정하신 거죠? 저, 좀 친절합니다. 요즘 시간이 무척이나 많거든요.)


나는 자영업자다. 역경과 인내의 아이콘인 소상공인이다. 공방 오픈을 준비할 때 소상공인 지원 대출이라는 금융상품으로 간단한 내부시설을 마련했다. 소상공인으로 대출할 때는 새로운 신분이 되는 것 같아 설렜다. 특별할 것 같은 정체성으로 내 일을 시작한 것이다. 내 일을 나 혼자 한다는 것은 프리랜서의 일과는 달랐다.  요청하는 곳을 찾아가거나 학교에 출강하는 일,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는 것과 결이 무척 달랐다. 특별하고 새로운 신분은 내가 만든 허상이었다.


자영업이란 열심히 일한 결과

나의 커리어가 된다. 나만의 노하우와 노동이 누군가의 이윤이 되던 이전일과 달랐다. 일한 만큼의 결과가 유형이든 무형이든 내 손에 떨어졌다. 그것은 부담스럽지만 대견한 일이라 짜릿했다. 돈이든 보람이든, 뭐라도 남는 장사니 할 만했다.  


2월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남는 장사. 그런데 지금은 완전 반대편에 있다. 남는 장사는 남지 않는 장사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더라.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교육정책의 변동마다 휘청거린다. 소비자는 여건이 어려우면 얄짤없이 발걸음을 끊는다. 수익창출 구조가 부실하다. 프랜차이즈도 아니다. 대기업 직영점도 아니니 어려움이 오면 고스란히 혼자 피해를 본다.


구멍가게 같은 소상공인 사업이라 해도 경영이 필요하고 손님을 모실 마케팅 전략을 짜야한다. 판매 타이밍을 노려야 하며 경제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유행은 어떻게 흐르는지, 정부 정책은 어떠한지 노련하게 적용해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야 한다. 아, 그러다가 위기라는 강풍이 불면 혼자 휘청거려야 한다.



요즘 두 달 가까이 폭풍을 막아서 흔들리고 있다. 마이너스로 생계비 지출, 월세 이월, 또 다른 대출, 원리금 상환액 체불, 카드값 납입 지연 등이 소상공인 영세사업장 대표의 민낯이다. 다음 달이면 카드도 정지될 거라는 소심한 예상을 해본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한 달만 버티자, 두 달 이상 가겠냐'라던 희망이 사치스러워졌다.


소득이 적어 대출도 어렵다는 금융권의 답변에 한숨이 나온다. 나만 그렇지 않을 테니,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 바닥에서 간신히 버티는 동지들 휘는 허리가 걱정스럽다. 큰돈 벌자고 시작한 일일까. 내 가족 부양하고 억 소리 나는 아파 대출금 35년 갚아갈 작은 소망으로 시작한 일 아닐까. 모두 그렇게 큰 욕심부리지 않고 시작했을 것이다.


한달 유업 후 코로나 확진자 감소 소식에 일대일 강의를 진행하지만 월세는 채울 수 있으려나? 사실 출근을 늦게 해도 되지만 아침 9시를 넘기지 않는다. 출근과 퇴근을 조정 가능한 일인창업자면서,  스스로 이른 아침 출근한다. 아이 둘은 온라인 개학 전 자유를 향유하며 엄마의 출근을 반긴다. 엄마의 이른 출근은 고음의 잔소리와 예리한 감시를 벗어날 절호의 찬스. 매일 일찍 나가길 바라는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출근한다.


출근 후 3분 거리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공방 문을 연다. 환기를 하고 소독약을 뿌린다. 밤새 실내에 가라앉아 깜빡깜빡 졸던 공기가, 훅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와 만나자 종이 몇이 푸르르 떤다. 이른 아침 출근은 잠시 희망적이다. '오늘 하루 더 생산적으로 뭐라도 하자!' 마음이 푸르르 기지개를 켠다.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음악을 틀고 오늘 할 일을 적는다. 미완의 업무, 수강생과 연락, 학부모 상담일정을 정리한다. 해야 하는 일을 앞에 두니 잠이 온다. 책상 아래 부분 난방을 위한 전기난로가 혼자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다. 코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탓인지 거하게 먹은 아침식사 탓인지 하품이 난다. 찜질방이 따로 없다. 무릎 아래위로 열기가 퍼진다. 노곤하다. 이렇게 넋 놓으면 하루가 멍하게 흐르는데, 아닌데 아닌데, 잠 안 오는데, 이 시국에 잠 오면 인간이 아닌데..... 무거운 눈꺼풀에 조금만 엎드리기로 한다.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 그러나 할 수밖에 없는 일, 미룰 수 없는 일을 생각하며 하고 싶은 일을 그려본다. 오늘따라 힘이 빠진다. 며칠 봄기운이 살랑거리더니 때늦은 추위에 시린 바람이 분다. 꽃샘추위 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싶다.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고 싶은데 급한일이 먼저라서 우선순위가 부딪힌다. 내 마음인데 내 일터인데 눈치 볼 사람도 없는데 마음의 부조화에 엎드린다. 10분만 자야지. 그래,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닌데. 자자. 자!


내가 대표이자 직원이니 이런 재미도 있구나.


그래, 잠 한숨 푹 자고 일어나실게요. 비록,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라도 눈치 볼 사람은 없네요. 이런 특혜 하나 즘 과하지 않겠죠?




인스타@35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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