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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Feb 20. 2024

인생은 평영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진득하게. 반드시 점프의 순간은 온다!

평영은 자유형이나 배영과 발차기 영법부터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많은 초보자들이 평영 앞에서 수영의 흥미를 잃고 돌아선다. 하지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구간이니만큼 열심히 덤벼보았다.


평영의 기본은 꺾기다. 고관절을 꺾고 무릎을 꺾고 마지막으로 발목까지 꺾어줘야 한다. 이 꺾는 디테일이 살아야 나중에 꺾었던 부분을 펼치며 앞으로 슝- 하고 나아갈 수 있다. 팔은 물속에서 하트 모양을 그리며 겨드랑이에 힘을 주고 가져온 후 앞으로 쭉 뻗는다. 팔과 다리의 타이밍도 중요해서 동시에 이루어지면 안 되고 약간의 엇박이 있다.


설명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이론은 확실히 익혔다. 선생님께 설명도 여러 번 들었고 유튜브를 통해 고수분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눈으로 감을 잡았다. 머리로는 알겠다 이거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다. 암만 꺾어봐도 힘껏 뻗어봐도 물속에 둥둥 떠있는 한 마리의 물개 같았다. 하도 속도가 안 나다 보니 내가 흐름을 막는 것 같아 뒷 순서 회원님을 먼저 앞으로 보내드렸다.


평영은 다른 영법에 비해 체력 소모가 적고 숨 쉬기에 용이해서 '생존 수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생존 수영이면 뭐 해, 앞으로 갈 수가 없으니 오히려 평영 하다가 물속에 잠기게 생겼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잘 꺾고는 있다고 하셨다. 그래, 자세는 좋다고 하니 그 말 하나 믿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팔으로는 하트를 그리고 다리로는 힘껏 발차기를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선 이쯤 되면 갑자기 마법처럼 실력이 향상되는 전개가 나와야 하지만 그 이후 수업이 2회 차가 더 진행될 때까지도 평영만 했다 하면 레인 중간의 우직한 맥주병이 되었다. 또 한 번 뒷 순서 회원님을 보내고, 보내고. 그런데 평영을 배운 지 3 회차쯤 되던 날 갑자기 앞으로 쭉쭉 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콕 집어 어떻게 평영이 하루아침에 가능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꾸준히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꾸준히가 몸에 어느새 스며들었나 보다.


역시 인생에서 '꾸준히'가 제일 어렵지만 그것만큼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이 없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꾸준히가 날 배신한 적이 없다. 취업 준비를 하며 삼성그룹의 인적성 시험인 GSAT을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땐 문제 유형도 다양하고 문항도 많아 제 시간 안에 푼 적이 없다. 그렇게 공채 시즌 시작 전 두 달을 꼬박 GSAT에 매진했다. 소금물 농도, 종이접기, 거짓말하는 사람 찾기 등등.. 취준생 백수에게 있는 건 시간밖에 없으니 문제집을 풀고 또 풀었다. 영업마케팅 직무는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 시험장 한 반에서 1명씩 합격자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그날 문제를 다 풀고도 시간이 남아 검산까지 하고 결국 시험에 통과했다. 


이제는 접배평자 중에 평영이 제일 쉽다. 선생님이 평영을 시킬 때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누군가 평영 잘하게 된 비법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왜냐면 그런 비법은 없었으니까. 언젠가 다가 올 실력 점프의 순간을 기다리며 진득하니 연습했을 뿐이다. 


우리는 1년은 과대평가하고 10년은 과소평가한다. 1년 안에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될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10년 안에 최고가 되는 건 꽤나 가능하다. 인생 1년만 살 거 아니니 꾸준히, 진득하게, 포기하지 말고 평영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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