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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Jan 23. 2024

목욕탕 배영선수

둥실둥실 보노보노처럼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물에 둥둥 떠있었다. 나는 이 역사를 이어 목욕탕에서 엄마의 손아귀에서 독립한 초등학생 어느 날부터 줄곧 냉탕에 둥둥 떠있었다. 엄마 손에 사정없이 때가 밀리고 난 후 냉탕에 들어가면 얼얼했던 피부가 묘하게 따끔따끔한 것이 재밌었다. 그렇게 매주 목욕탕에 가면 엄마는 나를 먼저 씻기고 엄마가 씻는 동안 난 냉탕에서 노는 것이 우리의 목욕 코스가 되었다.


정확히 냉탕에서 언제부터 어떤 수영을 한 것인지는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냉탕은 처음 보는 언니, 동생과 목욕탕 친목을 다지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작은 바가지 두 개를 UFO 모양으로 겹쳐 발차기를 했고 어떤 날은 2인 1조로 UFO 위에 한번 앉아보려고 용을 쓰기도 했다. 하루는 다른 지역 온천에 원정 목욕을 간 날 그 지역 친구가 수경을 갖고 온 것을 보고 '와, 이건 혁명이다!' 하는 충격과 함께 그 이후로는 줄곧 수경을 가져와 본격적으로 얼굴까지 담그고 수영을 했다. (사실 수영이라기 보단 물놀이에 가까웠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자신 있어하고 좋아하던 건 배영이었다. 목욕탕 친구들은 뒤로 눕는 것에 지레 겁을 먹어 시도조차 못하고 있을 때 그 앞에서 자신감 넘치게 휙- 배를 뒤집어 까고 배영을 선보였다. 솔솔 물장구를 치며 여유롭게 뻗어가는 '나'에 잔뜩 취해있었다. 우리 동네 목욕탕에서 배영으로는 초등부 원탑이었다.


요 자부심이 배영 사랑에 한 몫했지만 사실 배영을 좋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부력에 몸을 맡기고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값 비싼 침대에 누은 듯 마음이 편안했다. 특히 귀가 물에 잠겨 세상의 소리가 웅얼웅얼 들리는 것이 좋았다. 3차원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우주 공간에 나 홀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20년이 넘은 지금도 이 기분은 날 매혹시킨다. 회사 스트레스나 살아갈 걱정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온전히 수중 세상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장치다.


10살 꼬맹이도 나름의 근심걱정은 있었을 터. 물에 떠있는 동안 부정적 기운이 스르르 녹아내렸을까. 이리저리 떠다니다 엄마가 찾으러 오면 그제야 쪼르르 달려 나갔다. 그땐 평소보다 더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내게 배영은 유유자적이요,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다. 자연스레 목욕탕에서 배영을 수년간 수련한 덕분에 동남아 휴양지 쨍한 햇살을 인피니티 풀에서 여유롭게 배영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얼마나 나른한 기억인가.


그래서 수업시간에 배영 진도를 나갈 때에도 두렵지 않았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기대는 와장창 깨진다. 보노보노처럼 여유 있는 배영을 하다간 뒤에서 쫓아오는 회원님과 부딪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팔을 젓고 다리를 굴러야 한다. 그러다 레인에서 물살이라도 넘어오면 꿀떡 물 한잔은 예사로 마신다. 배영도 영법의 일종임을 깨달으며 얼떨결에 한 단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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