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노랑 Jan 30. 2024

배영은 신종 물고문이 틀림없다

물을 하도 많이 먹었더니 배불러요 꺼억

꼬꼬마 시절, 한때 목욕탕을 주름잡았던 냉탕의 배영선수. 좀 더 커서는 휴양지 수영장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던 낭만파 배영선수. 하지만 실내 수영장 배영 강습 앞에서는 모두 얄짤없다.


이 글은 약 한 시간 전까지 배영의 탈을 쓴 물고문을 당하고 와서 쓰는 글이다. 아주 따끈따끈한 경험담이다.


초급반에서 막 자유형 기본기를 끝내고 배영을 시작할 땐 정말 여유만만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역시나 나는 물에 잘 떴다. 그에 반해 같이 수영을 다니는 친구는 좀처럼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얼굴과 다리는 물 안에 있고 가슴만 물 밖으로 나오는 희한한 활모양이 되었다. 이 모습에 매번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고 혹시 가슴으로 숨을 쉬는 거냐며 눈물까지 흘리며 놀려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회원님들의 배영이 아직 서툴러 보노보노 배영을 하더라도 부딪히지 않고 느긋하게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팔 돌리기에 돌입하자 허덕이기 시작했다. 확연히 속도가 빨라져 느리게 가다간 진로를 방해하기 일쑤였다. 마음이 급해져 허겁지겁 팔을 돌리다 보면 그 물살을 그대로 돌아와 쓰나미처럼 얼굴을 덮쳤다. 꼬르륵. 게다가 키가 작은 편이라 남들만큼 전진하려면 팔을 더 끝까지, 더 빨리 돌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발은 파닥파닥, 팔은 퍼덕퍼덕하다 보면 물을 아주 한 바가지를 먹은 채 돌아왔다. 꺼억. 물 먹는 와중에 또 숨은 쉬려고 음파음파까지 했더니 공기도 이만큼 들어왔나 보다.


음, 여기까지도 오케이. 견딜 수 있었다. 근데 오늘 배운 배영은 지금까지와 사뭇 달랐다. 무려 배영 손에 평영 발차기 조합이다. 이 끔찍한 혼종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냥 한 팔씩 팔 돌리기가 아닌 동시 팔 돌리기까지 가지고 있다. 특히 동시 팔 돌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몸을 쓸고, 얼굴 앞으로 가져간 뒤, 쭉 정수리까지 뻗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아, 물에 빠지면 이런 시야겠구나' 싶을 정도로 물 안팎을 꼬륵 꼬륵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반복했다. 아주 수영계의 밀당 고수다.


뒤로 누운 채 평영 발차기를 하려고 무릎을 접는 순간 꼬르륵, 손이 얼굴 앞으로 지나가는 순간 또 꼬르륵.

다섯 발도 채 가지 못하고 일어서서 컥컥 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휴, 나만 이 모양 이 꼴인 건 아니라 참 다행이었다. 밀려드는 물을 못 이기고 잠시 일어나 숨을 고르는데 저 멀리 선생님이 보인다. 선생님, 저희가 뭐 잘못한 건 아니죠?


평소 물을 많이 먹지 않아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했는데 아마 오늘 3일 치 물은 족히 마신 듯하다. 내 사랑 배영의 두 얼굴로 신종 물고문을 당하긴 했지만 엄청 힘들었던 만큼 오랜만에 운동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꽤 좋다. 고문당하고 기분이 좋다니, 나도 수영 변태 다 됐구나.

이전 07화 목욕탕 배영선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