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여러 운동 중에서도 칼로리 소모량이 높은 운동으로 유명하다. 다들 알다시피 물속에서 걷기만 해도 다리와 코어 힘이 많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는데 수영 수업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잠깐 한 바퀴 걷고 오는 때이다. 걷는 게 가장 행복할 정도니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그 어떤 영법을 가져다 놔도 칼로리 소모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전신 운동이자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우리 몸에 있는 이 지방 덩어리를 활활 태워버리기에 딱이다.
근데 이 숫자는 뭐지? 혹시 체중계가 고장 난 것은 아닐까? 그럴 리 없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숫자 앞에서 저절로 뚱하니 고개가 갸우뚱 돌아간다. 분명히 한 달 동안 빠짐없이 주 3회, 월 12회 1시간씩 수영을 했건만. 자유형 한 바퀴 돌고 올 때마다 얼마나 숨이 찼는데! 수영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침대에 풀썩 쓰러진 날이 얼만데! 그런데, 왜 살이 더 찐 걸까. 흑흑. 나의 내장지방이 생각보다 고집이 센 녀석인 걸까.
나와 친구의 수영가방
사실 답을 알고 있다. 바로 우리들의 조촐한 아니 성대한 수영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힘이 없는 와중에 정말 미친 듯이 배가 고프다. 걸신들린 사람 마냥 거리에 있는 모든 음식에 눈이 돌아간다. 명랑 핫도그, 닭꼬치, 피자스쿨..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끊임없이 유혹한다.
수영을 한다 ▶ 극강의 칼로리 소모가 발생한다 ▶ 위장이 텅 빈다 ▶ 걸신이 들린다 ▶ 음식을 와구 먹는다 ▶ 살을 빼야 하니 또 수영을 한다 ▶ 무한반복
이것이 바로 수영의 역설, 뫼비우스의 띠다. 칼로리 소모가 높은 만큼 운동 후 참을 수 없는 허기 때문에 저절로 음식을 찾게 된다. 특히 갓 운동을 하고 나온터라 이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보상심리까지 더해 운동 중 태운 열량보다 더 과하게 먹게 된다.
첫 회식날 먹은 가리비찜
결국 한 달에 1번 공식적인 정기 회식을갖기로 했다. 일종의 치팅데이다. 첫 회식 메뉴는 가리비찜이었다. 아직 덜 마른 머리에 살짝 몸이 차가웠는데 뜨끈한 가리비 국물이 들어가니 그저 스르르 녹아내렸다. 거기에 입가심으로 청하 한잔 딱. 아, 이 맛에 운동하는구나.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수영 한 달 차, 운동 후 회식에 눈을 뜨고야 말았다. 관성이 참 무서운 것이 한 번 맛 들이게 되면 계속 그것만 찾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돼지파티 날 먹은 명랑핫도그와 피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에 1번 하기로 한 회식은 어느 금요일에 또 열렸다. 기어코 입이 터진 것이다. 늘 버스 타러 가는 길에 보던 명랑핫도그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설탕 솔솔 뿌린 핫도그가 먹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명랑핫도그를 입에 물고 걸어가는데 내일은 주말이니 맛있는 거 먹으면서 영화 한 편 봐야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피맥이다. 이미 명랑핫도그가 든든히 자리 잡은 상황인데도 풀려버린 식욕의 고삐는 왠만해서는 잡아채기 어려웠다. 결국 피자 한 판을 사서 '이거 완전 돼지파티다'라고 깔깔 대며 집으로 향했다.
이러니 살이 찌지!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아직 좀 억울하다. 매일같이 먹은 것도 아니고 닭가슴살로 저녁을 때운 날도 많았는데. 근데 억울하긴 해도 절대 회식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입에 자극적인 맛이 퍼지는 순간 팡팡 터져 나온 아드레날린은 그 어떤 종류의 행복이 와도 채울 수 없는 아예 다른 영역의 속성이다.
최근에는 체력이 늘기도 했고 위장도 적응을 해서 그런지 예전처럼 배가 고프진 않다. 그렇지만 우리의 회식은 계속된다. 어릴 적 생일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것처럼 괜스레 매달 회식을 기대하게 된다. 한참 전부터 회식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는 재미도 있고 회식을 핑계 삼아 평소엔 잘 먹지 않는 술을 마시며 친구와 시시콜콜한 얘기하는 것도 너무 좋다.
부딪히는 짠 소리에 온몸에 기분 좋은 스파크가 튄다. 이 짜릿함을 오래 만끽하기 위해 돌고 돌아 또 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