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진득하게. 반드시 점프의 순간은 온다!
평영은 자유형이나 배영과 발차기 영법부터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많은 초보자들이 평영 앞에서 수영의 흥미를 잃고 돌아선다. 하지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구간이니만큼 열심히 덤벼보았다.
평영의 기본은 꺾기다. 고관절을 꺾고 무릎을 꺾고 마지막으로 발목까지 꺾어줘야 한다. 이 꺾는 디테일이 살아야 나중에 꺾었던 부분을 펼치며 앞으로 슝- 하고 나아갈 수 있다. 팔은 물속에서 하트 모양을 그리며 겨드랑이에 힘을 주고 가져온 후 앞으로 쭉 뻗는다. 팔과 다리의 타이밍도 중요해서 동시에 이루어지면 안 되고 약간의 엇박이 있다.
설명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이론은 확실히 익혔다. 선생님께 설명도 여러 번 들었고 유튜브를 통해 고수분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눈으로 감을 잡았다. 머리로는 알겠다 이거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다. 암만 꺾어봐도 힘껏 뻗어봐도 물속에 둥둥 떠있는 한 마리의 물개 같았다. 하도 속도가 안 나다 보니 내가 흐름을 막는 것 같아 뒷 순서 회원님을 먼저 앞으로 보내드렸다.
평영은 다른 영법에 비해 체력 소모가 적고 숨 쉬기에 용이해서 '생존 수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생존 수영이면 뭐 해, 앞으로 갈 수가 없으니 오히려 평영 하다가 물속에 잠기게 생겼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잘 꺾고는 있다고 하셨다. 그래, 자세는 좋다고 하니 그 말 하나 믿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팔으로는 하트를 그리고 다리로는 힘껏 발차기를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선 이쯤 되면 갑자기 마법처럼 실력이 향상되는 전개가 나와야 하지만 그 이후 수업이 2회 차가 더 진행될 때까지도 평영만 했다 하면 레인 중간의 우직한 맥주병이 되었다. 또 한 번 뒷 순서 회원님을 보내고, 보내고. 그런데 평영을 배운 지 3 회차쯤 되던 날 갑자기 앞으로 쭉쭉 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콕 집어 어떻게 평영이 하루아침에 가능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꾸준히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꾸준히가 몸에 어느새 스며들었나 보다.
역시 인생에서 '꾸준히'가 제일 어렵지만 그것만큼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이 없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꾸준히가 날 배신한 적이 없다. 취업 준비를 하며 삼성그룹의 인적성 시험인 GSAT을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땐 문제 유형도 다양하고 문항도 많아 제 시간 안에 푼 적이 없다. 그렇게 공채 시즌 시작 전 두 달을 꼬박 GSAT에 매진했다. 소금물 농도, 종이접기, 거짓말하는 사람 찾기 등등.. 취준생 백수에게 있는 건 시간밖에 없으니 문제집을 풀고 또 풀었다. 영업마케팅 직무는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 시험장 한 반에서 1명씩 합격자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그날 문제를 다 풀고도 시간이 남아 검산까지 하고 결국 시험에 통과했다.
이제는 접배평자 중에 평영이 제일 쉽다. 선생님이 평영을 시킬 때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누군가 평영 잘하게 된 비법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왜냐면 그런 비법은 없었으니까. 언젠가 다가 올 실력 점프의 순간을 기다리며 진득하니 연습했을 뿐이다.
우리는 1년은 과대평가하고 10년은 과소평가한다. 1년 안에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될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10년 안에 최고가 되는 건 꽤나 가능하다. 인생 1년만 살 거 아니니 꾸준히, 진득하게, 포기하지 말고 평영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