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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Feb 27. 2024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그 분이 오실거야

접영을 배운 지 어느덧 3달째. 여전히 나의 양팔 접영 폼은 흡사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는 모양과 비슷하다.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으니 전에 없던 스트레스도 받고 수영이 가기 싫어지면서 강습을 빼먹는 날이 많아졌다. 말로만 듣던 그 '수태기'가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나는 과연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접영을 배우는 동안 총 3차례의 고비를 맞이했다.


첫 번째 고비는 물 밖으로 나오기. 접영의 시작은 입수킥. 빵! 하고 발등으로 물을 꾹 누르며 엉덩이를 들어 올려 물속으로 미끄러지듯이 쭈욱 내려간다. 그리고 웨이브를 타듯이 숙였던 고개를 들고 출수킥과 함께 한 마리의 숭어처럼 물 밖으로 솟아오르면 된다. 근데 입수는 잘 되는데 왜인지 암만 출수킥을 차도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싯적 댄스 동아리도 정도로 몸을 쓰는 사람인데 물속에서는 뚝딱이가 되었다.


이 친구는 얼굴이 물 밖에 나오기라도 했지, 난 이것마저 못했다

'너 왜 물 중간에서 그렇게 가만히 떠있어?'


아니, 남들은 웨이브 타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숨 쉬러는 고개만 빼꼼 들고 잘 나오던데 난 억지로 허리를 뽑아내야만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자연스레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면 몸이 떠오를 것이고 그 타이밍에 출수킥을 차면 된다고 했는데 내가 하니 그저 물속에 잠겨있는 나이키 모양의 사람이었다. 나중엔 허리가 아파 진짜 힘을 안 줬더니 수족관 해마처럼 가만~히 떠있었다. 잘 안되니 속상한 와중에 이게 너무 웃겨서 한참 박장대소 했다.


그래도 이 고비는 하루 날 잡고 주말에 자유 수영을 가서 맹연습 한 덕분에 기어코 이겨냈다. 그래, 난 어떤 고난과 시련도 이렇게 악바리 근성으로 이겨냈던 사람이라고. 그러던 와중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걸을 때마다 찌릿찌릿 아팠고 다음 날이 되자 절뚝거릴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정형외과에 급히 가보니 병명은 '슬개염'. 의사 선생님이 최근에 어디 부딪혔느냐, 무리한 운동을 했느냐 해서 따로 무리한 건 없고 수영하고 있다고 하니 곧장 '혹시 접영 하세요?'라고 물어봤다. 뜨든. 접영 하면서 기를 쓰고 킥을 찼던 탓에 무릎에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무슨 푸들도 아니고 하필 병명도 슬개염이라니.. 다행히 사나흘정도 약을 먹으니 통증은 사라졌지만 그 핑계로 또 강습을 빼먹었다.


세 번째 고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두 번의 고비를 겪으며 수태기가 제대로 왔다. 접영에서 시작한 이 마음의 병은 평영으로, 배영으로, 자유형으로 번져나갔다. 수영 실력이 향상되며 선생님이 자유형 5바퀴는 기본으로 시키는데 한 번씩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서 문득 바라보게 되는 초급반 레인. 아무것도 모르고 '명랑수영' 하던 그때가 그립다. 하지만 그리움도 잠시, 뒤쫓아오는 회원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다시 마지막 한 바퀴를 돌러 가야 한다.


하지만 이 세 번째 고비를 맞이한 마음가짐은 생각보다 가볍다. 내가 국가대표로 올림픽 나갈 것도 아니고 건강하고 즐겁자고 하는 운동인데 접영 그거 못하면 어때!


그간 숱한 경쟁 아래 잘해야 한다는 그리고 꼭 이겨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온 것이 어느새 떼어내기 어려운 습관으로 몸에 남아버렸다. 고등학생 때는 늘 반 1등을 했고, 대학을 와서는 늘 장학금을 받았다.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폴짝폴짝 잘도 넘다가 취업 준비를 하며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다. 불합격이라는 결과도 슬펐지만 날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계속 달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슬퍼도 다시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해야 했다. 힘들어도 죽을 듯이 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취업 후 비로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가장 즐거웠다. 아무것도 안 하면 발전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는데 지장은 없으니까. 물론 내 성격에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는다. (ㅋㅋㅋ)


마지막에 웃는 사람보다 매일 자주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 너무 진지할 필요 없다. 지금 접영이 잘 안 된다고 속상해할 시간에 좋아하는 평영 한 바퀴 더 돌고 오면 된다. 아등바등 살던 버릇 잠시 내려두고 옆 동네 마실 가듯 자유형, 배영 기웃거리다 보면 언젠가 접영 하는 할머니, 그분이 내게 다시 올 것이다.


오늘도 즐기는 마음으로 Let's Sw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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