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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d Aug 17. 2024

04.Card players

데이비드 호크니 The card players



04. Card players




매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반이면 세 남자는 램튼의 술집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머리에 살집이 두툼한 빅 조와 모자를 꾹 눌러 써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러스티, 그리고 웃지 않는 안셀은 거의 20년째 매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반에 모이는 자신들을 위해 비워져 있는 구석의 삼각 모양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셀이 안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고 세 사람은 곧 카드게임을 시작했다. 한 시간 반가량 카드게임을 하고 나면,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술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 램튼의 가게를 떠나버렸다. 



“저 사람들은 왜 일요일마다 와서 술값도 내지 않고 카드 게임만 하고 가는 거죠? 아저씨는 아신다면서요. 왜 이야기를 안 해주시는 거예요? 궁금해 죽겠네.”



다른 테이블에 맥주를 두 잔 가져다주고 돌아온 클레멘트가 램튼에게 물었다. 클레멘트는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였다. 그녀는 처음 일한 주부터 계속해서 세 남자의 이야기를 램튼에게 물었다. 클레멘트의 집요한 질문에 램튼의 미간에 있던 주름이 더욱 깊게 패였다.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나 싶을 만큼 깊게 고민하던 램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극이 일어난 날은 약 20년 전 한겨울의 일요일이었다. 안셀은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딸 타라의 손을 잡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새로 생긴 유람선의 초대권이 안셀의 동네에 마구 뿌려졌는데, 안셀의 아내가 두 장이나 당첨이 된 것이었다. 안셀은 좋은 기회를 딸에게 양보했고, 두 모녀는 뺨이 얼어붙을 듯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이 나서 예배가 끝난 뒤, 유람선을 타러 간 것이었다. 안셀은 타라에게 두터운 니트 머플러를 둘러주고 자신도 점퍼를 입었다. 두 사람이 유람선을 타는 동안, 강둑에서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유람선을 타고 돌아오면 헤스터 씨가 운영하는 초콜릿 헤븐에 가서 진한 핫 초콜릿과 크루아상을 먹을 생각이었다.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 크리스티아나와 타라는 안셀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안셀의 장갑을 껴 어린애답지 않게 손이 커다래 보이는 타라를 보며 안셀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강둑으로 가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안셀은 유람선이 보일만한 곳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 한 모금을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자 이상한, 아니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 911 구조대가 구명보트를 타고 유람선에 접근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구명보트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태웠고 구조요원들이 있는 강변에 그들을 실어 날랐다. 안셀은 강변으로 뛰어 내려갔다. 해가지도록 그곳에서 크리스티아나와 타라의 모습을 찾으려 발을 굴렀다. 산 사람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간혹 나오는 사망자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다. 두 모녀도 그랬다. 새파랗게 질려버린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안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셀은 차가워진 딸아이의 발을 붙들고 우느라, 친구 빅 조와 러스티가 두 모녀의 뒤를 이어 구조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열하는 자신을 본 두 친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 역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빅 조와 러스티 다음으로 구조된 사람이었다. 몸에 담요를 두른 채 구급요원에게 검사를 받던 그는 안셀을 보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당신의 두 친구 빅 조와 러스티가 크리스티아나와 타라 몫의 구명조끼를 빼앗았다고. 그것만 아니었어도 두 사람은 살 수 있었다고. 그 모습을 본 빅 조와 러스티는 친구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안셀의 얼굴은 더욱 큰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소식을 전한 고발자를 저주했다. 안셀의 다갈색 눈동자는 허망함과 슬픔으로 짙게 물들었고 분노와 미움으로 타는 듯한 붉은 핏줄이 안셀 눈의 나머지 부분을 메웠다. 



두 모녀를 포함한 다른 사망자들의 시신과 칼로 찌르는 듯한 강물의 온도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향했다. 안셀 역시 그들과 함께였다. 늦은 저녁, 빅 조와 러스티, 그리고 두 사람을 고발한 자가 있는 병실에 안셀이 들어왔다. 겨우 30대 중반이었던 그의 얼굴은 슬픔이 할퀴고 지나간 자국으로 깊게 패여 하루 만에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셀은 창가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작은 전구 하나가 뿜는 빛에 의존하고 있던 병실은 그들의 침묵으로 인해 더 깊은 어둠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안셀이 입을 열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반, 램튼의 술집에서 모여 카드를 치세. 그 누구도 빠질 수 없어.  내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와 내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내 친구들이라는 걸 알려줘 더 깊은 고통으로 날 밀어 넣은 죄를 갚도록 하게. 술값은 내지 않겠어."



안셀이 고발자 램튼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술값을 내는 날이 자네들을 용서하는 날일세."






클레멘트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이야기를 마친 램튼은 조용히 마른 천으로 유리잔을 닦았다. 지난 20년 동안 빅 조와 러스티, 그리고 램튼의 얼굴은 잠잠히 늙어갔지만, 이상하게 안셀의 얼굴은 늙지 않았다. 20년 전, 병실에 들어온 노인의 얼굴 그대로였다. 



"왜 하필 카드를 치는 거죠?"



클레멘트가 다시 물었다.



"아이가, 카드 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더군. 아버지가 쉬는 일요일이면 저녁을 먹기 전에 꼭 포커 게임을 했다고."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일요일이었다. 연휴 특유의 즐거움으로 들뜬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녔고, 램튼의 가게도 들뜬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북적였다. 다섯 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안셀이 나타났다. 그리고 세 남자는 포커를 치기 시작했다. 포커 게임이 끝나갈 무렵, 안셀이 손을 뻗어 20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술잔을 비운 것이다. 안셀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썼다. 그리고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빅 조와 러스티, 램튼, 그리고 클레멘트만이 숨을 죽이고 안셀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아니.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



램튼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안셀은 지갑에서 20달러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나머지는 팁일세. 행복한 성탄절 되기를."



그렇게 말하는 안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지만, 어쩐지 그의 어깨와 발걸음은 가볍고 평온해 보였다. 클레멘트는 안셀이 눈 내리는 바깥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폭삭 늙은 두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홀가분하다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둘은 무엇이 그들을 자리에 붙여놓기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보였다. 램튼의 입은 그 어느 때보다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항상 꼿꼿이 서 있던 그는 이제 카운터 뒤의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안셀은 그날 이 후,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매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반이면 램튼의 가게에는 어김없이 빅 조와 러스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셀이 앉던 자리는 램튼이 앉아 있다. 세 사람은 담배를 피우며 포커를 친다. 그들의 미간과 눈가, 코 양 옆에는 주름이 새겨져 있다. 그 주름은 세 사람이 포커를 칠수록 더욱 깊고 짙어진다. 마치 누군가 모르는 사연을 그곳에 숨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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